[손병채의 센스메이킹]〈18〉'스크린에서 거리로, 온라인 정체성의 위기'

2023. 8. 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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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묻지마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다 행인을 공격한 이들이 붙잡히고 이를 본 누군가는 유행에 따라간다고 밝히며 살인 예고 글을 올린다. 지난주 전국에서 30대부터 10대까지 총 54명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살인예고 글 작성 후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성년자로 대부분 장난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실시간 보도와 기사에 붙는 범인을 묘사하는 표현인 스워드마스터, 키작남 등과 범행 동기를 지적하며 등장하는 일부 정치적 표현은 그저 인터넷 밈이라며 넘기기에는 꽤나 끔찍한 현실 속 피해자들 및 그들 가족의 비명과 맞닿아 있는 맥락 위에서 확인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생성되고 확산되는 집단적 분노 표현의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그 단서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사회생활을 연극 공연에 비유했다. 그는 개인은 자신이 공연하는 무대, 즉 특정 물리적 환경과 이를 관찰하고 반응하는 관객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적 자아를 구현한다고 주장하며 무대를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무대 위'는 낯선 사람을 포함한 많은 청중이 있는 공개적 사회적 맥락이다. 이때 개인의 공연은 관객에게도 공유되는 명확한 관습에 맞춰 조정된다. 또한 자신이 관찰되고 있다는 인식의 형성으로 인해 개인은 부정적인 인상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조정하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거나 업무 중 낯선 이들을 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둘째, '무대 뒤'는 친한 친구나 함께 일하는 동료 등 아는 사람으로 구성된 소규모 청중이 있는 보다 사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공연은 진행 중이나 연기하는 역할은 개인이 자신의 진짜 자아를 나타낸다고 믿는 것에 가깝다. 셋째, '무대 밖'은 관객이 없고 배역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종종 앞으로의 사회적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이 긴장을 풀고 행동하는 맥락이 이에 해당한다.

비록 이같은 고프먼의 관점은 대면 상호작용을 위해 작성되었으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자가 어떻게 현실과 가상의 정체성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지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경우에 유용하다.

우선, 변화된 사회 정체성 생성의 현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과 청년은 소셜앱을 통해 무대 위, 뒤, 밖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고, 역할과 외모를 수정하고, 관객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즉, 온라인 공간에서는 엄격한 설정, 역할, 각 무대 간의 경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라이브 스트리밍, 팔로워와 공유하는 일상적 라이브 등 현실과 가상 행위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진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책임으로만 바라보고 비난하는 아슬아슬한 현재의 사회적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던 변화가 필요한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개인정보 공개 여부의 사용자의 결정권 부여와 이를 확인가능하게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 구조적 변화를 고려해 봐야 한다. 인류학을 비롯해 지리학 및 다른 분야에서도 장소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정의된다. 개인이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장소'는 내·외부적 전체 요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공간'은 그 안의 대상들과만 관계를 맺는 한계가 존재한다.

많은 경우 온라인 커뮤니티는 각자 숨기고 싶어 하는 파편화된 개인의 일부만을 공유하고 그에 맞는 단순하고 얕은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의 역할에 머무른다. 물론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으나 커뮤니티 내 언행의 틀을 허용하는 주체로서의 사용자 정보를 포함시키는 '장소'가 될 필요도 있음을 우리는 현재 목격 중에 있다. 흔하게 대안으로 제시되던 실명제는 적용 가능성에 있어 많은 제약을 만난다. 오히려 온라인 커뮤니티 내 사용자가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얼마나 공개할지, 누가 볼 지 등 다른 사용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범위를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주고 이를 통해 다양한 레벨의 커뮤니티에 속하도록 플랫폼을 디자인해 제안할 수 있다.

현실의 프로필과 연결된 자신을 온라인에서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건 쉽지 않으나 신뢰와 기회를 얻는 새로운 권력의 한 축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즉, 사용자의 자신을 공개하는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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