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전기차 경쟁, 충전 생태계로 확전
미국 전기차 충전 생태계에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미 전기차 시장을 절반 넘게 차지하는 테슬라가 자사의 '슈퍼차저' 충전 생태계를 넓히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완성차업계와 새로운 충전동맹을 결성하면서다. 미국 정부의 전기차 차량 보조금 혜택에서는 테슬라에 밀렸던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는 어떻게 반격할지 주목된다.
◇테슬라 생태계 확장...현대차·기아 글로벌 충전동맹 맞대응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제너럴모터스(GM)·BMW·메르세데스-벤츠·스텔란티스·혼다와 북미 지역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참여회사는 총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공동 투자해 북미 시내와 고속도로에 3만개 충전 인프라를 설치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미 GM과 더불어 BMW, 벤츠, 스텔란티스, 혼다 등 다국적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은 테슬라 중심의 충전 환경을 새로 정립하기 위해서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합작 투자를 발표하면서 “현대차 전동화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충전 환경을 재정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미국에서 전기차, 전기차 충전 시장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미국 전기차 시장뿐 아니라 충전 시장에서도 테슬라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테슬라는 미국에서만 1만8000개 급속 충전기 슈퍼차저를 구축했다. 테슬라의 올해 2분기 슈퍼차저 공급량은 5627개로 작년 동기(4283개) 대비 1344개 늘었다. 슈퍼차저 핵심 부품인 커넥터는 작년 2분기 3만6165개에서 올 2분기 4만8082개로 급증했다. 테슬라는 GM과 포드 등 자국 업체뿐 아니라 볼보, 폴스타, 다임러, 닛산 등 다른 나라 업체에도 슈퍼차저 자체 충전표준(NACS, 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을 개방했다. NACS를 중심으로 전기차 충전 생태계를 구축, 확장하고 있다.
테슬라가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듯 했으나 현대차·기아와 글로벌 완성차업체 간 동맹이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합작사는 2030년까지 고전압 초급속 충전기 3만개 이상을 미 전역에 설치할 계획인데 현재 테슬라가 운영하는 슈퍼차저는 1만8000여개다. 합작사는 테슬라가 지원하지 않는 800볼트 초급속 충전도 지원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가 테슬라 NACS도 지원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현대차가 3만개 충전소에서 글로벌 표준 규격인 CCS(복합충전표준, Combined Charging System)을 지원하면 테슬라에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차는 500볼트를 지원하는 테슬라 슈퍼차저보다 높은 고전압 800볼트 충전과 18분 이내 고속 충전도 지원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주유소처럼 추가적인 편의시설도 구축한다. 충전소에 화장실과 음식 서비스, 소매점 등 편의시설 운영과 함께 플래그십 전기차 충전소에는 추가 편의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미 충전기 보조금 경쟁도 점화
테슬라가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을 또 한번 키우는 과정을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 미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자국 생산업체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테슬라 전기차 판매 확대에 한몫했다.
이와 달리 현대차는 지난 4월 제네시스 브랜드 'GV70'이 보조금 명단에서 제외됐다. 테슬라는 현대차·기아 등 다른 나라 완성차 업체와 미국 시장에서 손쉽게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테슬라 모델3, 모델Y를 추격하던 아이오닉5(현대차), EV6(기아)는 1분기 각각 작년 동기 대비 8%, 35% 판매량이 줄었다.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 경쟁에서는 다른 양상이다.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현지 충전소를 직접 구축하면 미 정부로부터 충전 인프라 조성에 따른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미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에 75억달러(약 9조8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는 충전 동맹으로 데이터 유출 우려도 낮출 수 있다. 앞서 일각에서는 현대차·기아가 테슬라 NACS를 사용하면 차량 운행 정보, 결제 정보, 충전 패턴 등 각종 소비자 데이터와 배터리 소모 속도, 설계 특성 등이 테슬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대차·기아의 충전 동맹은 테슬라 NACS의 독점 지위를 깨면서 미국 전기차에 이어 충전 시장에서도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시장에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며 “현대차는 전동화 기술 개발, 시설 투자를 지속하면서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어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 중장기전략으로 시장 확대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순위에서 현대차그룹은 3위를 기록했다. 현대차와 기아를 합친 시장 점유율은 5.3%다. 1위는 테슬라로 62.4%의 압도적 우위다. GM이 7.6%, 포드 4.2%, 리비안 3.1%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로서는 불리한 상황이지만 다양한 신차 출시와 충전 인프라 확장 등으로 만회한다는 게 현대차그룹 계획이다. 미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해 62%대였던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026년에는 18%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향후 시장 구도 변화 여부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은 아이오닉6, 아이오닉5N, 디올 뉴 코나 일렉트릭 등 신차 출시를 늘린다. 고용량, 초고속 충전기 기술 내재화도 서두른다. 전기차 충전 시장에 대응해 고성능 충전 브랜드 이피트(E-pit)도 선보였다. 국내 충전 전문 스타트업에 투자, 신규 사업 모델 개발, 고객 서비스 개선 등 충전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김흥수 현대차 글로벌전략조직(GSO) 담당 부사장은 지난 6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충전 플랫폼이 유효할지 따져봐야 한다”라며 “고객 입장에서 분석하고 중장기 기회 요인까지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웅 기자 jw0316@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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