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좨송해하지 않는 사람들

이현승 기자 2023. 8. 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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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좨송합니다. 너무 좨송해요. 너무큰실수를햇내요. 앞으로는 조심또조심하갯읍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인 이 댓글 하나가 지난달 많은 사람을 울렸다. 서울 노량진에서 40여 년째 자영업을 하는 분식집 노부부가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에 올라온 불만 리뷰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답변이다. 뒤늦게 화제가 된 뒤 하루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장님들 잘되셨으면 좋겠다”며 주문을 넣고 있다.

노부부의 유명세가 갸우뚱한 사람들을 위해 이들이 남긴 또 다른 댓글을 소개한다. “나이는 먹었어도 항상서툴러요. 모든어른들도 거의갓(같)다고 봄(봅)니다. 절(젊)은분들은어른들은완벽한줄알지만요즘은절은분들이더똑똑하답니다.” 숟가락만 보내달라고 했더니 젓가락까지 보내줬다는 리뷰에 단 댓글이다. “또주문안하새(세)요? 재(제)가원하시는매(메)뉴하나더드리고십은대(싶은데)다음에혹시라도주문주시면냉면얘기 꼭하새요” 냉면 육수가 부족하다는 리뷰엔 일단 사과를 한 다음 한 달 뒤 또 이런 답변을 달았다.

이 노부부의 사과에는 남 탓이 없다. 김치가 시다, 밥이 질다, 국수 간이 안 됐다 등 소비자들의 입맛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각종 불만 사항에 대해 일단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자세를 낮춘다. 그다음에 무엇이 원인인 것 같다고 짧게 설명한 뒤 “다음에 서비스를 드리겠다”는 식의 보상 계획을 내놓는다.

노부부의 진심 어린 사과에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상황은 사람들이 그것에 얼마나 목말라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걸 사과해야 하나 싶은 일에도 번번이 고개를 숙이는 노부부와 달리 잘못하고도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문을 잘못 받아놓고 항의하면 갑질 손님 취급하는 자영업자부터 교실에서 선생님을 때리고도 기사화되기 전까지 모른 척하던 초등학생과 부모까지 몰염치에 끝이 없다.

사람들이 사과에 인색해진 것은 법률 자문을 받은 유명인들이 발표한 애매모호한 입장문을 학습한 결과다. 변호사들은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표했다가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져 불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으므로 사과를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하라고 조언한다. 그 결과 아동학대, 성추행처럼 구체적인 행위를 적시하는 대신 ‘불미스러운 일’, ‘죄스러운 사건’ 등으로 쓰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쓴 입장문이 세상에 여럿 나왔다. 자신들의 상황을 변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그럴 뜻은 없었지만’, ‘오해가 있었다’, ‘본의 아니게’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자기 아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급 교사를 고소한 일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을 빚은 웹툰 작가 주호민 씨 부부가 2일 발표한 입장문이 대중의 공분을 산 것도 앞선 유명인들의 애매모호한 사과문과 닮아있어서다. 주 씨 부부는 입장문에서 아이에게 녹음기를 쥐여 보낸 것에 대해선 ‘다른 방법을 몰라서’, ‘언론 보도에서 봤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교사와 면담도 없이 고소를 진행한 것은 ‘교육청과 학교에서 그 방법밖에 없다고 해서’라고 썼다. 본인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와 제도 탓이라는 것이다. 같은 학교 학부모와 특수교사에겐 거듭 사과했지만 그의 고소로 직위가 해제됐었던 당사자는 ‘상대 교사’로 지칭하며 끝내 미안함보단 억울함을 피력했다. 재판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는 1차 입장문과 같은 결이다.

주 씨 부부가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을 어려움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그들이 녹음된 결과물을 근거로 아이와 교사를 당장 분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경위와 사정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소상히 밝혀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함께 힘든 여건 속에서 교육 현장을 지켜온 특수교사의 심정도 이해받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설령 이 특수교사가 진심을 담아 아이에게 나쁜 말을 한 것이고 법정에서도 그 사실이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오직 아이와 교사의 분리만을 원했으며 이미 전학을 결정한 주 씨 부부가 무엇을 얻을 지 의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 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던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2017년 개봉한 주 씨 웹툰 원작의 영화 신과함께 죄와벌에 나오는 대사를 올렸고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사과에는 용기가 필요하단 말에 공감한다. 우리 사회에는 용기가 조금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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