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허훈, 리그 판도 뒤흔들 태풍의 눈

김종수 2023. 8. 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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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가드가 강한 팀은 약할 수가 없다’, KBL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필승공식(?)이다. 원년 강동희를 시작으로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 양동근, 주희정, 김선형 등 27번의 정규시즌 동안 국내 선수 MVP를 가장 많이 배출한 포지션은 단연 포인트가드다. 무려 14번(공동수상 1회 포함)이나 나왔다.


역대 우승팀에는 여지없이 빼어난 포인트가드가 존재했다. 해당 포지션이 다소 아쉬운 경우에는 조 잭슨, 키퍼 사익스 같은 외국인 1번이 활약해줬다. 반대로 양궁농구 시절의 LG 등 아쉽게 우승에 실패한 팀에는 포인트가드의 약점이 뚜렷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퓨어 포인트가드에서 듀얼가드로 바뀌어 가기는 했지만 팀을 이끄는 1번 야전사령관의 아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력한 1번의 위력은 플레이오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지난 시즌만봐도 그렇다. 리그 데뷔 2년차 이정현은 토종 주포 전성현의 건강상태 등 이런저런 악재 속에서도 당시 소속팀 캐롯(현 소노)을 4강까지 올려놓았다. 지지난 시즌 통합우승팀 SK같은 경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기는 했지만 당시 주역인 최준용, 안영준이 없는 상태에서도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베테랑 1번 김선형이 미친 활약을 펼쳐준 덕이 컸다.


다음 시즌 대반격을 노리는 수원 KT가 가장 믿는 구석도 바로 1번 포지션이다. ‘베이비 헐크’ 하윤기(24‧204cm)가 차세대 국가대표 주전 센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급격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고 리그 최고의 수비형 포워드 문성곤(30‧195.6cm)이 새로이 가세했지만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은 단연 포인트가드 허훈(28‧180cm)이다.


스타 군단 KT에서도 단연 영향력, 존재감 1등이다. 현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은 서울 SK다. 그 뒤를 전주 KCC, 창원 LG, 원주 DB, 울산 현대모비스 등이 따르고 있다. 수원 KT도 빠질 수 없다. 역대 어떤 시즌보다도 강팀들의 힘 대결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KT팬들은 대권도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선수층, 포지션별 밸런스 등에서 충분히 해볼만한데다 무엇보다 허훈이 돌아오는 이유가 크다. 현 국내 선수들을 통틀어서도 수위를 다툴만한 허훈이 있기에 우승 후보들과 경쟁이 가능한 것이다. 허훈은 특별하다.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명랑 소년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특유의 카리스마가 가려져 있을 뿐 누구보다도 강한 승부욕으로 똘똘 뭉쳐있는 파이터 유형의 공격형 포인트가드다.


소년만화에서의 주인공은 엄청난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평소에는 ‘투기(鬪氣)’를 쉽게 방출하지 않는다. 심각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동료 혹은 지인들과의 경쟁을 즐긴다. 때문에 평소에는 날것 그대로의 주변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느낌까지 준다. 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꼭 이겨야 되는 순간이 찾아와 각성모드에 들어서게 되면 달라진다.

 

 


‘이 세계관의 중심은 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섭게 강적들을 쓸어버린다. 거기까지 가면 이른바 ‘끝판왕’이라는 존재들도 의미가 없어진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이른바 주인공 버프는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허훈은 KBL의 주인공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스타중 하나다.


사이즈가 큰 것도, 온몸에서 강함을 풀풀 풍기는 것도 아니지만 코트에 서게되면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은 금세 사라진다. 부친 허재가 그랬듯 승부욕의 화신이 되어서 불길을 이고 다닌다. 에이스형 선수들이 그렇듯 뇌관을 자극받으면 폭발력까지 더해져 전방위로 수비진을 헤집고 다니며 득점을 하고 패스를 올린다.


허훈은 듀얼가드와 퓨어 포인트가드의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성향의 선수다. 신장은 작은 편이지만 현역시절 부친이 연상될 정도로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스피드, 파워 등 신체능력이 좋은지라 기회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빈틈을 파고 들어가는 돌파 능력이 최대 장점이다.


어지간한 충돌로는 중심을 잃지 않을 만큼 밸런스가 좋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장점을 살려 다른 플레이까지 만들어낸다. 일단 돌파를 워낙 잘하는지라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그 쪽에 많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데 허훈은 슬래셔 스타일중 손에 꼽힐만큼 슈팅 능력이 안정되어 있다. 골밑까지 밀고 들어갈 듯 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춰서서 쏘는 스탑 점프슛은 물론 드리블 훼이크후 기습적으로 던지는 풀업 점퍼나 3점슛도 위력적이다.


빼어난 볼 핸들링을 앞세워 타이밍을 빼앗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이렇듯 허훈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크맨은 확실하게 제압해버린다. 과거 부친이나 혼혈가드 전태풍 등이 그랬듯 대놓고 주구장창 일대일을 시도해도 막아내기 어렵다. 때문에 상대팀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더블팀, 트리플 팀을 준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예열을 마친 허훈을 상대로는 별반 효과적이지 않다. 이미 그러한 방식에 적응할데로 적응한 허훈은 자신에게 몰린 수비를 역으로 이용해 빈공간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에 능숙하다. 이상민, 김승현 등처럼 천재적인 센스가 번쩍이는 엄청난 패싱센스로 경기를 쥐락펴락하지는 않지만 단신 외국인선수급 개인기로 득점을 주도하면서 빈곳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 패스를 찔러준다.


또 다른 의미의 언터처블급 1번이다고 볼 수 있다. ‘허훈이 전략이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런 허훈이 전방위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면서 흐름을 주도하기에 KT는 더욱 무서운 팀으로 주목받고 있다. 허훈의 패스를 받아 골밑 마무리를 하는 선수가 하윤기이며 외곽에는 다수의 양궁부대가 수시로 찬스를 노린다. 다소 아쉬운 수비 부분은 해당 분야 전문가 문성곤이 함께 한다. 허훈 효과가 KT의 다음 시즌 전투 랭킹을 어디까지 상승시킬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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