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혁신위 조기종료 가닥, 李 '리더십 위기' 출구전략?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표정이 어둡다. 심기일전을 위해 휴가를 떠난 나흘 사이 난제가 첩첩산중 쌓이면서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일으킨 논란까지 이 대표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김 혁신위원장 논란에 대해 직접 유감을 표명하고 혁신위 활동을 이달 중 조기에 마무리하게 하는 일종의 출구전략을 구상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사법 리스크' 등을 놓고 이 대표의 총선 지휘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당내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어 그의 리더십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대표는 7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노인 폄하성 발언 등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발언 때문에 마음에 상처 받았을 분들이 계신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감 표명으로 휴가 복귀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그는 '(대한노인회 등에) 직접 사과할 의향 없느냐'는 질문에 거듭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 경질 여부, 혁신위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현재 당 안팎에선 혁신위를 두고 당 혁신을 이끄는 게 아니라 당 위기를 초래하는 기구라는 지적이 무수히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으로 혁신위 폐지 요구가 높아지자, 혁신위는 당초 9월초까지로 계획했던 활동 시한을 앞당겨 오는 20일경 조기 종료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정기국회 초반까지 활동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가능한 정기국회 전에 활동을 종료하고 혁신안을 당에 제출하는 걸로 정리돼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당 내에선 이같은 결정 배경에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돼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초선의원은 "혁신위가 이 대표 리더십과 결부돼있기 때문에 위원장 거취 문제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논의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혁신위는 지난주까지 이어졌던 지방 간담회 일정 등을 접고 혁신안을 마무리해 다음주부터 2주간 당 조직 개혁 방안 등을 서둘러 내놓을 방침이다.
다만 혁신안 가운데에는 계파 간 첨예한 갈등 사안인 대의원제 손질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혁신위 발(發) 추가 논란이 당을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대의원제 폐지 또는 축소는 친(親)이재명계 의원과 당원들이 주장해온 당 혁신 방안이다. 대의원 표의 비중을 줄여 권리당원과 동등한 표를 행사하도록 하면 차기 공천 등 당의 중요 의사결정시 권리당원 지지세가 높은 친명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혁신위가 대의원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안을 혁신안으로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혁신위는 당 내에서 '이재명 친위대' 이미지를 굳혀 가고 있다. 혁신위가 대의원제 손질 방안을 제안한 후 조기 사퇴하면 이 대표로선 '혁신위 간판을 내리라'는 비명계 요구는 들어주면서 사실상의 대의원제 폐지라는 실익을 거두는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
다만 지도부나 친명계 내부에서도 이견은 감지된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간담회 때 "대의원제를 폐지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기본 원리에 반할 수 있다. 권리당원들만으로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 특정 지역의 의사결정권이 극도로 위축되고 제약될 것"이라며 "(대의원 1명이 권리당원 60명과 같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문제라면) 대의원 수를 늘리면 된다"고 했다. 정성호 의원도 이날 "일각에서 얘기하는 폐지는 저도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명(非이재명)계에서는 '혁신위 퇴진'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낙연 전 총리와 가까운 윤영찬 의원은 "도덕적 권위, 윤리적 권위를 상실했다"며 "혁신위 활동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이날 오전 불교방송(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혁신위가 혁신위를 운영해야 할 동력을 이미 상실했다"며 "그간 혁신위가 혁신안으로 낸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불체포특권 포기이고, 다른 하나가 꼼수 탈당 방지책이다. 이중 1호 혁신안(불체포특권 포기)은 간신히 반쪽짜리로 통과했고 2호(꼼수 탈당 방지책)는 선언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그러고 나서 혁신위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원 간담회를 하면서 김은경 위원장의 '노인 폄하' 말실수가 나왔다"며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지금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태라면 지금 남아있는 건 그(혁신위 활동을 접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혁신위에서 혁신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도덕적인 권위가 인정이 안 될 것"이라며 "이런 문제들이 계속 터지고 '혁신위가 오히려 혁신 대상'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혁신위가 무슨 안을 내놓은들 깊이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재성 전 의원도 이날 KBS 라디오에 나와 "총선 비전을 내놔야 되는 게 혁신위의 과제인데 혁신위 자체가 저렇게 비틀대니 혁신안을 내놓을 수가 없지 않느냐"며 "혁신안 자체를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비명계에서는 혁신위 관련 논란에 대해 이재명 대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윤영찬 의원은 '이 대표가 혁신위 관련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며 "혁신위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신 분이 이재명 대표"라고 했다. 이어 "그 혁신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또 혁신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 그리고 본인의 개인사 문제까지 나왔다. 이 대표로서는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혁신위 좌초는 결국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진단도 했다.
비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도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지금 큰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이재명 대표 체제를 전제로 혁신위를 한다는 게 얼마나 될까 싶었는데 이거는 기대를 넘어서서 당에 해악을 여기저기 끼치고 있으니까 빨리 종료를 해야 된다"며 "당연히 이 대표도 책임이 있다. 혁신위를 구성하는 건 당 대표 등 지도부에서 결정한 것"이러고 했다. 이 의원은 "이런 상황들을 보면 애초부터 혁신안 해서 이재명 대표 체제를 연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체제의 결함 때문에 도덕성도 추락됐고 당내에 여러 가지 공론화나 민주주의가 상당히 옥죄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라고 부연했다.
혁신위 논란이 아니라도 이 대표를 둘러싼 상황은 엄혹하다. 검찰은 최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술 번복을 고리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이 대표 소환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이어질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치권 안팎에선 검찰이 체포동의안 표결 절차를 거치도록 하기 위해 8월 국회 또는 9월 국회에서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최근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무소속 윤관석 의원의 구속으로 당내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며 이 대표 리더십이 더욱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다.
정성호 의원은 최근 이 대표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대표의 거취 문제가 언급되는 데 대해 "정기국회 이후에 총선을 위한 당내 기구를 만들 때 이재명 대표가 당 안팎의 여러 의견들을 종합, 당의 변화와 혁신안들을 구체적으로 내놓은 다음에 어떤 것이 당의 승리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선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최근 나돌았던 '10월 사퇴설'에 선을 그으면서도 12월 9일 정기국회 종료 이후의 가능성은 열어 두는 듯한 언급을 해 눈길을 끌었다.
정 의원은 "지금 단계에서 '4개월 후 비대위 체제로 가겠다'고 하면 그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 대표 지도력이 상실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10월 사퇴설, 12월 비대위설을 논의할 게 아니라 검찰이나 정권의 총력 공세에 당이 일치단합해 대응하고 민생현안에 대해서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이 대표의 차기 총선 불출마 전망에 대해서도 "내년 5월 30일까지가 이 대표의 국회의원 임기다. 지금 불출마한다면 그 순간 국회의원으로서 중앙 정부 등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며 "그건 매우 무책임한 것으로 불출마 문제도 지금 전혀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정 의원은 이 대표가 내년 총선시 서울 종로 또는 용산에 출마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종로나 용산이나 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 당내에서 어디 출마할지를 논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2차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는 데 대해서는 "검찰발 단독 기사로 8월 소환설, 백현동 소환설 얘기가 나오는데 이 대표는 정면으로 소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검찰이 빨리 해주길 바란다"고말했다. 회기 중 영장 청구로 인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표결을 해야 할 경우에 대해서는 "회기 중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이미 선언했기 때문에 우리 당에서도 그걸 존중해서 결정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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