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中‧大’ 선거제 메뉴판 앞 여야의 ‘동상이몽’[2023 선거제 개편]

박성의·구민주·변문우 기자 2023. 8. 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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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 않는 사표에…尹도 與野도 ‘중대선거구제’ 화두로
합의점 못 찾는 여야…선거구제·비례대표제 모두 ‘쳇바퀴’
헤메는 국회에 정치권 일각 “선관위 산하 위원회 구성하자”

(시사저널=박성의·구민주·변문우 기자)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지 35년, 국회가 현행 선거제도를 수술대 위로 올릴 준비를 마쳤다. 거대 양당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시민사회 일각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다. 국회는 '여야 2+2 협의체'를 발족하며 내년 22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선거제의 대표성‧비례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여야 모두 공감하는 모습이다. 다만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중대선거구제'의 효과와 부작용 등을 둔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선거제 개혁을 둔 '동상이몽' 속 여야의 나침반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시사저널 박은숙

①진단: 총선마다 발생하는 '무더기 사표'

기호 1번 혹은 기호 2번, 지난 21대(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의 95%가 이 두 '숫자'를 달았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67%였다. 양당을 지지하지 않은 약 30%의 민심이 사표(死票)가 돼 묻힌 셈이다. 비단 지난 총선만의 문제도 아니다. 민주화 이후 13대(1988년)부터 21대(2020년) 총선까지 평균 사표 비율은 49.98%에 이른다.

사표가 늘어나면서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균형 문제도 초래되고 있다. 지난 총선(지역구 기준)에서 민주당은 득표율 49.9%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41.5%를 기록했다. 양당이 얻은 표 차이는 8.4%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의석수는 163석 대 84석으로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차이가 났다. 10만 표의 격차로 압승하나, 100표의 격차로 신승하나 1석을 얻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기에 나타난 결과다.

일각에서는 소선거구제가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지역 감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영남지역에서 55.9%를 득표하고도 65석 가운데 56석(86.2%)을 얻었고, 민주당은 호남에서 68.5% 득표율로 28석 가운데 27석(96.4%)을 쓸어 담았다. PK(부산‧경남) 지역도 비슷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PK 유권자의 40.1%(부산 44.0%, 울산 39.1%, 경남 36.1%)가 민주당을 택했지만, 얻은 의석은 7석에 그쳤다.

ⓒ시사저널 양선영

②처방: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률을 늘리자

이에 정계 일각에선 현행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중대선거구제'다. 중대선거구제란 한 개의 선거구에서 두 명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제도다.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률도 늘어나기에, 사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시사저널이 지난 3월30일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020년 21대 총선 득표율을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해 시뮬레이션(지역구 획정이 미정이니만큼 대선거구제 기준)한 결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소선거구제일 때는 전체 253석 중에서 양당 합계 247석을 가져갔지만, 중대선거구제일 때는 231석을 차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16석을 정의당 등 '제3의 정당'이 더 가져간다는 뜻이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지역주의가 일부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대구에서 12석 중 11석을 차지했는데, 중대선거구제였다면 7석에 그치고 민주당이 3석 정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각각 10석인 전남과 전북에서 10석과 9석을 차지했는데, 중대선거구제 아래서는 각각 6석 정도를 차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중대선거구제도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대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의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선거구에서 4~5명을 뽑을 때는 득표율 40%로 당선되는 사람과 가장 마지막 순위로 4%를 득표하는 의원이 나올 수 있다"면서 "당선자에게 대표성이 있다고 볼 수 있냐"고 반문하며, "굉장히 위험성이 큰 제도"라고 말했다.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의 장단점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가운데, 정계에 몸담았던 다수의 원로들은 중대선거구제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는 양상이다. 국회의장실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를 개편한다면 우리 정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일로 정치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소선거구제도는 국민 뜻이 제대로 선거 결과에 반영되지 못한다"며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호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보도된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현행 소선거구제에 대해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양선영

③변수: 망설이는 현역, '주류'는 소선거구제 원한다?

문제는 드러났고, 진단도 나왔고, 대통령의 동의도 있었다. 선거제 개편의 적기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국회가 소극적이다.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는 큰 틀에는 여야 모두 동의하지만 △도시와 농촌 간 선거제 구분 △비례 의원 규모와 선출 방법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시기 등을 두고 여야뿐 아니라 각 당, 의원들의 선수에 따라 의견이 갈리면서다.

이에 여야 모두 선거제와 관련해 명확한 당론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단지 각 당은 ①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③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3개 안을 테이블에 올린 채 마라톤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①안은 국민의힘이 제안한 안이다.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는 서울 등 대도시는 중대선거구제를 택하고, 농어촌에서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병립형은 20대 총선 이전처럼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 수를 나누는 방식이다. ②안과 ③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시했다. 준연동형은 지난 21대 총선에 도입된 방식으로 정당 득표율을 초과하는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빼고, 나머지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다만 이 3개안 모두 사장될 가능성도 있다.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수뇌부 모두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도 선택지에 올려둔 상태다. 특히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따르던 친윤석열계 의원 중 일부도 소선구제 유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위성정당 논란을 빚었던 대목을 수정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도 언급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회의원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선거구가 만들어지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합의가 어렵다"며 "특히 당의 주류들은 굳이 선거판을 흔들 이유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전문가 위원회를 만든 뒤 몇 가지 안을 국회에 제시, 가부를 통해 통과시키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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