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치료 혁명, 우리가 앞당길 것"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트업
실리콘밸리의 관문으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남쪽 지역엔 당뇨병 치료제, 항암제 등으로 유명한 미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지원센터가 있다. 릴리가 다른 회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고자 2019년 설립한 곳으로, 이름은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다. 릴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10곳 안팎의 유망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다.
여기 둥지를 튼 스타트업 중엔 한국인 창업자가 세운 스타트업도 있다. 미국 UC버클리대 생명공학 박사인 이근우(35) 대표, 박효민(43) 수석부사장이 2016년 공동 창업한 진에딧(GenEdit)이다. "버클리 창업 지원 공간에서 창업해서 3년 정도 있었어요. 구성원들이 늘면서 2019년에는 미어터지기 직전이었죠. 그때 릴리 측에서 저희한테 입주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두 배 이상 큰 공간을 쓰고 있어요." 진에딧이 성장 가능성이 큰 떡잎이었단 걸 릴리가 알아본 셈이다.
[곧, 유니콘] 박효민 진에딧 수석부사장
진에딧을 눈여겨본 건 릴리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 회사가 받은 투자액은 약 5,500만 달러(약 720억 원). 실리콘밸리 한인 스타트업 중 단연 손에 꼽히는 규모다. 애플·구글·인스타그램·링크드인·줌 등에 초기 투자해 '실리콘밸리 유니콘 감별사'로 불리는 세쿼이아캐피털이 시드 투자를 했고 SK 등 국내 기업들도 투자에 나섰다.
진에딧의 공동 창업자인 박 수석부사장을 최근 진에딧 본사에서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전자 가위 치료
반드시 올 미래, 유전자 치료 시대를 여는 기업.
진에딧은 유전자 치료 기술과 치료제를 만드는 회사다.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체내 원하는 곳으로 정확하게 실어 나르는 기술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대 교수가 처음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타깃 유전자를 정밀하게 조준해 자르고 교정하는 기술이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질병 치료에 혁명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를 모았는데 실제 활용엔 큰 한계가 있었다. 체내 치료가 필요한 곳에 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안전하게 실어 나를 수 있어야 실제 치료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뚫을 가능성을 연 게 이근우 진에딧 대표다. 이 대표는 박사 과정 중 다우드나 교수와 공동 연구를 통해 고분자화합물인 폴리머 기반 나노입자를 통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배달하는 기술을 찾았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다우드나 교수의 논문을 통해) 2012년 세상에 나온 뒤 이를 바탕으로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들도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기대보다 속도가 더뎠죠. 정말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됐는데도 큰 성과가 나오지 않은 건 결국 배달 때문이라고 저희는 봤어요. '우리 연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수요도 분명하다면 우리가 직접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박사후연구원을 준비하던 두 사람이 전격적으로 창업하기로 뜻을 모은 배경이다.
믿을 수 있는 동업자
극소수만 살아남는 세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
잠재력이 큰 기술이란 확신을 갖고 출발했지만 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과학도에서 창업자로 모드를 바꾸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스타트업 업계에 들어와 보니 쓰는 언어 자체가 생소했어요. 학교에 있을 때는 학술 콘퍼런스에 가면 구체적 데이터를 갖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사업가는 내가 아는 걸 뽐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더라고요."
크고 작은 난관에도 7년 이상 회사를 성공적으로 끌고 올 수 있었던 데는 세쿼이아 같은 투자사를 비교적 일찍 만난 덕이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동 창업자를 잘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박 수석부사장은 말한다.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랐는데 운이 좋게도 믿고 의지하는 동생이 회사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한 거죠. 성향은 저와 다른 부분이 많지만 서로 보완이 되는 사이라 시너지가 난 것 같아요."
좋은 동업자나 투자사 등 믿고 같이 갈 만한 사람, 확실한 기술이나 아이디어,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시장이 있다면 창업에 나설 만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갖춰져 있더라도 정말 극소수만 살아남는 곳이 그가 경험한 스타트업 세계다. "평생 겪은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생길 수 있어요. 창업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감당하고 버틸 수 있을 만큼의 회복력과 자신감이 있는지도 고민해보세요."
좋은 선례로 기록되는 것
한국인 창업 바이오 스타트업으로서 진에딧의 목표.
진에딧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는 기술로 출발했지만, 이후 mRNA(메신저리보핵산) 등 다양한 물질들을 전달하는 폴리머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유전자 가위에만 통하는 전달 기술이 아니란 게 알려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협업을 의뢰하는 기업들이 늘었다. 이에 지난해에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 연구개발센터를 마련했다. 한국으로 역진출한 셈이다. 판교 센터는 미국 본사에서 만든 기술을 테스트하는 일을 주로 맡는다.
최근에는 다른 제약사 등과 협업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중에서도 뇌신경질환 신약이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진에딧의 기술이 상용화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면 바이오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는 인재가 더 많이 나올 수 있으리란 게 박 수석부사장의 기대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바이오테크 회사를 창업한 한국인이 많지 않으니까 한국에서도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는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이 의지로 반짝 빛나는 듯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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