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건설 복마전’ 척결 기회다[신보영의 시론]

2023. 8. 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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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경제부장
아파트 붕괴도 부를 부실 시공
민낯 드러난 건설업계 카르텔
비용에 불신까지 심각한 해악
설계·시공·감리 견제와 보완
LH 자정 포함 장기 대책 필요
야당도 카르텔 혁파 동참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주차장의 무더기 철근 부실 시공 사태는 알음알음 퍼졌던 건설업계 복마전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를 좀먹는 다양한 모순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건설업계가 설계에서 시공, 감리까지 전(全) 공정이 짬짜미로 점철돼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토교통부의 ‘무량판 공법’(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는 구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에서 더 밝혀지겠지만, 하청에 재하청·재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공정 단계는 비리의 기반을 제공한다. 불법 하도급 업체가 관여했거나 불법적 수의계약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불투명한 구조는 철근 등 건설자재 빼먹기나 분양가 부풀리기, 타워크레인 월례비로 대표되는 ‘건폭’ 같은 행위를 쉽게 양산한다. 여기에 지역 조폭의 건설업 진출과 미숙련 외국인노동자 급증까지 엮이면서 광주 아이파크 붕괴, 인천 검단 GS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이어졌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공기업 내부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와 정부의 관리 부실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발주 아파트 15단지 중 10개 단지의 감리 업체는 2019∼2022년 LH로부터 감리 미흡 등을 이유로 벌점을 받았는데도 버젓이 추가로 사업을 수주했다. 이 중 8개 업체는 LH 출신의 ‘전관’이 재취업한 곳이다. 연간 10조 원 규모에 달하는 공사 및 용역을 발주하는 LH가 이처럼 부실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이다. 특히 LH가 2021년 내부 정보를 이용한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이후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지난 2년간 무엇을 자성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건설업계와 LH 전관이 결탁한 이권 카르텔이 부를 후폭풍이다. 일단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다. LH 발주 아파트의 주차장 보강 비용은 단지별로 최소 2000만 원에서 최대 8억9000만 원에 달한다. 국토부가 오는 9월 말까지 진행하는 전국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에서도 철근 누락이 확인되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다. 105개 단지는 주거동에도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만큼, 조사 결과 일부라도 재건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판단된다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GS건설의 검단 아파트 전면 재시공 비용이 5500억 원이다. 105개 단지에 입주한 15만 가구가 겪을 정신적 피해에 사회적 자본 하락이라는 무형의 피해까지 따지면 이번 사태가 낳은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아파트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 자체를 크게 흔들 수 있다. 불신이 만연하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규칙에 기반한 민주주의·자본주의 질서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바라봐야 한다.

사실 부패 카르텔 혁파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윤석열 정부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통계청 기준 2021년 말 165만 명에 달하는 건설업 종사자 표를 대거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설 이권 카르텔을 방치한다면 한국 사회에 미칠 해악이 너무 크다. 쾌도난마처럼 쉽게 한 번에 깨부수기 어렵다는 점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오는 10월 발표할 종합대책에는 다각적 해법과 함께 장기적인 플랜도 담겨야 한다. 건설업계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감시’ 체제를 확립하는 게 기본으로, 이에 실패한 LH에 대한 엄중한 문책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LH 전관의 재취업 제한뿐 아니라, LH 내부의 강도 높은 자정을 강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되면서 탄생한 ‘매머드 기관’인 LH 분할도 대안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에 건설 분야도 덧붙여 장기적 국정 과제로 삼기 바란다. 3대 개혁이 미래에 방점이 있다면, 건설 개혁은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지금 당장 풀어야만 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역시 민생을 생각한다면 건설 현장 정상화 5법을 비롯한 ‘이권 카르텔’ 혁파 법안 통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신보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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