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칼럼] 베토벤 死因과 ‘후쿠시마’ 검증의 한계
악성 베토벤이 남긴 아홉개 교향곡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제5번 ‘운명’일 것이다. 아마 음악사에 등장하는 모든 교향곡 중 최고 인기를 누리지 않나 싶다. 음악평론가들은 운명의 4개 악장을 투쟁, 희망, 의심, 승리로 칭한다.
제1악장 첫머리는 모든 클래식 음악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음악에 거의 문외한인 내가 들어봐도 정말 운명이 그렇게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웅장하고 거대해서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압도당하는 것 같다. 베토벤이 연주 시간 35분 안팎인 이 걸작을 완성하는 데 소요한 시간은 5년 정도였다. 운명 교향곡이 감상하는 이들에게 주는 힘은 베토벤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진지하게 예술혼으로 담아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베토벤은 삶을 마감한 후에도 사인을 둘러싸고 곡절이 뒤따랐다. 올해 3월 독일과 영국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악성 베토벤의 사망원인에 대해 새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종전의 납 중독설을 부정하고 바이러스에 의한 B형간염이 사인이라고 밝혔다.
베토벤의 사인은 1827년 사망 당시를 포함해 이번까지 200년 동안 모두 세 차례나 바뀌었다. 세 번 모두 당대의 과학에 바탕으로 한 검증 결과였다. 역사적 인물의 과학적 사인 규명이 이렇게 바뀌는 것을 보면 과학의 한계와 가변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경험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과학적 검증 결과를 내세워 8월 중에 태평양으로 방류할 계획이었는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과학자들은 그 오염수가 정화되면 인체 및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발표했다. 일본 당국자들은 그것이 과학적 검증 결과라며 오염수 방류를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이들은 부디 베토벤 사인규명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100년 후 언젠가 지금과 다른 과학적 발견이 나오지 않는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과학의 한계와 상대성에 관해 베토벤 사인 규명이 주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베토벤의 사망 당시 사인을 둘러싸고 의학계 안팎에서 여러 설이 나돌았다. 그가 포도주를 많이 마셨는데 당시 유럽에 술을 납 병에 보관하는 풍습이 있어서 납 중독일 것으로 추측했을 뿐이다. 19세기 초엽 선진 문명권이던 유럽 중심부의 의학과 과학 수준으로 세기적 악성의 사망원인을 단정하지 못한 것이다.
2005년 미국 아르곤 연구소는 머리카락 분석을 통해 베토벤이 정상인의 100배에 달하는 납 중독이었다고 밝혀냈다. 베토벤이 활동하던 19세기 초 유럽은 산업혁명이 본격화됐고 그 결과 여러 산업체와 공장들의 오·폐수가 아무런 규제 없이 자유롭게 하천에 방류됐다. 베토벤은 민물고기 요리를 즐겼다. 민물고기를 안주로 오스트리아산 와인을 자주 마셨다는 것이다. 민물고기는 빈을 거쳐 흐르는 다뉴브강에 무제한 방류된 중금속들을 함유하고 있었고, 와인은 납병에 넣어 둔 것이니 베토벤의 사망 원인이 납과 수은 등 중금속 중독이라고 보았다.
그로부터 20년 지난 올해 3월 국제공동연구팀이 B형간염을 새로운 사인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또 종전의 베토벤 사인 규명에 쓰인 시료인 머리카락이 신원 미상 여성의 것이었다고 밝혔다.
베토벤 사인 규명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과학이라는 명분으로 불가역적인 행위를 결정해서는 곤란하며 어느 시대든 당대의 과학으로 미래 세대 이슈에 대해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원전 오염수가 ALPS라는 정화장치를 거친다 해도 지구환경과 인체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단정할 것이 아니며 상당 부분 미래 세대의 과학으로 넘겨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사조로 자리잡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가변적인 과학적 검증을 내세워 인류 공유의 바다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불가역적 행위는 제지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사고 이후 대처에서 한국, 중국, 동남아, 남태평양도서국 등 주변국은 물론이려니와 자국 어민들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ALPS의 시행착오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알려졌다. 오염수 검증을 위한 시료 채취도 이해 당사국인 한국의 연구기관조차 거부됐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이라며 분석한 시료가 여성의 것으로 밝혀져 무의미해진 사례처럼 오염수의 시료 채취가 개방되지 않는 한 불신감은 지워지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130만t 이상의 오염수가 30~40년간 태평양으로 방류될 때 주변국들이 그것을 지속적으로 감시 검증하는 일은 일본 측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염수가 무해하다고 확신한다면 일본이 자국의 농업이나 공업용수로 사용하면 된다. 무해 여부를 단정하지 못한다면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경우처럼 후쿠시마 원전도 그 위에 붕소와 납, 진흙과 모래 등을 쏟아붓고 10층 높이의 콘크리트 건조물로 봉인해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뿐 아니라 인류 미래세대와 지구환경에 대해 도리를 다하는 방안이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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