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에서 쇼핑·유통으로 확장된 쿠팡 vs CJ 대충돌 [권상집의 논전(論戰)]
글로벌 경쟁력 위해서는 경쟁사 아닌 고객에 집중해야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국내 기업 중 쿠팡과 CJ만큼 소비자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서는 기업은 없다. 두 기업의 핵심 사업은 모두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지배를 지향한다. 식품, 콘텐츠, 영화관, 유통으로 소비자의 먹거리와 즐거움을 충족하려는 CJ와 이커머스를 시작으로 OTT까지 소비자의 삶 전반에 침투하려는 쿠팡의 대립은 그래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시작은 햇반의 납품가 대립이지만 갈등의 핵심은 관심경제의 주도권 확보에 있다.
확장하려는 쿠팡과 차단하려는 CJ
코로나가 시작된 후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영역은 다름 아닌 이커머스 산업이었다. 이커머스는 유통과 쇼핑을 아우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기에 다수의 기업이 격전을 벌였다. 롯데와 신세계 등 기존 오프라인 강자부터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다수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인수합병과 함께 전략적 충돌을 빚었다. 참고로, 네이버는 2021년까지 해당 시장의 패권을 놓지 않았다.
3년의 경쟁 끝에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새로운 패권을 차지한 기업이 등장했으니 바로 쿠팡이다. 신세계는 쿠팡과 네이버에 대응하기 위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후 SSG닷컴과 시너지를 모색했으나 끝내 3강 구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2021년까지 이커머스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유지했던 절대강자 네이버 역시 쿠팡에 거래액과 활성사용자 수 등 핵심지표에서 밀리며 왕좌를 빼앗겼다.
신세계와 네이버를 넘어 이커머스 산업의 패권을 차지한 쿠팡의 지향점은 한국판 아마존이다. 쇼핑은 배송이자 물류이고 즐거워야 한다고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의장은 강조한다. 한국판 아마존을 넘어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콘텐츠 산업에 발을 들여놓고 진화된 서비스 '로켓 그로스'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 면에서, 생활문화 기업 CJ와의 충돌은 관심경제 장악을 위한 최후의 승부다.
CJ올리브영 역시 매년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국내 헬스앤뷰티(H&B) 시장을 장악해 막강한 존재감을 유통과 이커머스 업계에 드러냈다. CJ올리브영의 성장이 무서운 이유는 H&B 오프라인 스토어가 아닌 옴니채널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운 데 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인근 매장에서 3시간 안에 빠르게 상품을 배송하는 CJ올리브영의 오늘드림 서비스는 로켓배송만큼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쿠팡은 곧바로 CJ올리브영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지난해 시작된 햇반 전쟁 이후 대립 전선을 화장품, 더 포괄적으로는 쇼핑과 유통 영역으로 확대한 셈이다. 현재, 쿠팡은 자칭 '쿠플시네마' 서비스를 통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OTT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CJ ENM의 OTT인 티빙(Tving)을 넘어 CJ의 영화관 사업인 CGV를 정조준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CJ는 식품, 유통, 콘텐츠를 핵심 사업으로 일궈왔고 2011년 CJ오쇼핑과 CJ E&M을 합병하며 이커머스와 콘텐츠는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 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팡 역시 최종 목표는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이다.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 이커머스와 콘텐츠, 유통 역량 강화는 쿠팡에도 필요충분조건이다. 다각화를 통해 확장하려는 쿠팡과 이를 차단하려는 CJ의 대립이 전방위에서 벌어지는 이유다.
소비자는 편리함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만 고객은 편리함과 친숙함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으로 표현되는 충성고객을 만들기 위해선 세계관을 공유해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유니버스(세계관)를 강조하고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까지 콘텐츠에 진출하는 건 모두 고객과의 유니버스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면 고객의 관심 자체가 혁신의 원동력, 기업 성장의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언론에서도 두 기업의 갈등을 지켜보며 어떤 기업이 더 유리한지 각기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쿠팡에 비해 CJ가 자체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부족하다는 평가부터 수년간 유통과 콘텐츠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운 CJ의 노하우를 쿠팡이 넘기 힘들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다만, 두 기업은 지금 서로를 향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최후의 승자는 고객을 누가 먼저 바라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쿠팡과 CJ 대결, 누가 더 유리할까
쿠팡이 이커머스 산업에서 왕좌를 차지한 이유는 경쟁사를 꺾는 데 초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팡은 고객을 위해 보다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경영철학을 토대로 중개형 플랫폼 모델을 내세워 일상생활에 유용한 상품을 판매해 급성장했다. 저렴한 제품 그리고 빠른 배송은 쿠팡의 상징이 됐고 99%의 도착 보장률로 쿠팡은 업계 매출 1위에 올라섰다. 쿠팡의 성장은 고객의 신뢰에 있다.
CJ 역시 마찬가지다. K푸드와 K콘텐츠가 있기까지 CJ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다양한 제품 실패를 겪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를 강행, 글로벌 시장에서 한류 열풍과 한식 바람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CJ가 문화콘텐츠 산업의 패권을 차지한 이유 역시 상대를 제압하는 데 힘을 쏟지 않고 전 세계 고객에게 다양한 한국의 음식, 콘텐츠를 알리겠다는 경영철학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이 서로를 저격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지금의 모습은 그래서 패착이 될 수 있다. 쿠팡과 CJ는 첨단기술에 의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과 실험을 통해 고객의 만족도를 충족시켜야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다. 이른바 관심경제의 영역이 바로 쿠팡과 CJ의 사업 분야다. 관심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고객의 신뢰 확보에 있다. 그리고 고객의 신뢰는 바로 기업의 긍정적인 브랜드에서 나온다.
콘텐츠와 쇼핑이 결합한 형태의 구독서비스는 이커머스와 콘텐츠 산업의 최종 정착지다. 두 기업의 경쟁 구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지금의 경쟁은 고객 만족에 포커스를 둔 건설적인 경쟁이 아닌 단순 대립일 뿐이다. 관심경제의 글로벌 시장을 놓고 보면 두 기업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관심경제에서 혁신은 경쟁사가 아닌 고객에게 집중할 때 창출된다. 고객에게 먼저 집중하는 기업이 이 왕좌의 게임을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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