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종 ‘생명의 나무’는 하나의 근원세포에서 시작됐다
이전 칼럼까지는 생태계와 이를 품고 있는 우리 지구의 물리-화학적 특별함을 알아보았다. 이번 칼럼부터는 생태계를 무대로 이야기를 써나가는 다양한 주인공들에 대해 알아보자.
생물학자들은 항상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지구에는 얼마나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고 있을까? 도시에서 생명의 다양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사람 이외에 살아있는 생물을 접하는 경우는 식물이라 해야 가로수나 화분, 동물이라 해야 개나 고양이 등이 고작이다. 개와 고양이가 아무리 많아도 다양한 동물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개수가 아니라 종류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 지구에는 약 30만 종의 식물과 770만 종의 동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종이란 무슨 뜻일까? 개와 고양이가 다른 종류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생물학에서는 분류 기준에 따라 둘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개와 고양이는 다른 ‘종’이지만 같은 ‘동물’이다.
생물 교과서에서 나왔던 종-속-과-목-강-문-계라는 분류를 떠올려보자. 이를 분류 체계라고 하는데 뒤로 갈수록 더 포괄적이다. 예를 들면 개와 고양이는 다른 ‘과’에 속하지만, 같은 ‘목-강-문-계’에 속한다. 풀어쓰면 육식동물(목)-포유류(강)-척추동물(문)-동물(계)까지는 같은 종류로 분류되고, 개(과)와 고양이(과)부터는 따로 분류된다. 그리고 종은 가장 세부적인 분류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 단위로 생각하면 된다.
분류 체계는 생태계를 가득 채운 다양한 생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눈금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대상의 분류는 모든 학문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생물학에서 분류 체계가 특히 중요한 것은 여기에 해당 생물이 거쳐 온 진화 단계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 분류 체계는 1735년 스웨덴의 박물학자 린네가 처음 제시하였다. 이 때는 진화론이 발표되기 124년 전이라 여기에는 진화라는 개념이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생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면서 체계적으로 분류하다 보면 진화의 개념이 저절로 튀어 나올 수밖에 없다. 린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막연한 영감과 이론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이 영감을 과학적 이론으로 만든 것이 찰스 다윈이다.
린네와 다윈…분류학과 진화론의 만남
현대 물리학이 뉴턴의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대 생물학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발표 이후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다져진 과학적 논증의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수만에서 수십억년의 단위로 진행되는 유전자의 진화 현상을, 백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을 사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의대생으로 공부를 시작한 다윈은 당시의 형편없던 해부학 수업에 실망해 자퇴하고 신학과에 다시 입학한다.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한 교과목 외에도 곤충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 등도 추가로 공부한다. 진화에 대한 영감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공부는 결과적으로 진화론이라는 초점을 향한다. 그리고 이십대 청년 다윈은 영국 해군 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5년간 세계를 돌며 지리적으로 격리된 섬이라는 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을 접한다. 이 탐험이 끝났을 때 이미 진화론은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신학자이기도 한 그는 진화론의 파괴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후 이십년 동안 진화론의 추가적인 증거를 모으고 신중하게 원고를 다듬는다. 그리고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다.
예상대로 이 책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온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공격을 받을수록 더욱 강력한 이론이 되었다는 점이다. 진화론은 귀납적 이론이다. 다윈은 생물의 분류에서 관찰된 현상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도록 가설을 설정한 것이다. 그런데 귀납적 가설은 취약하다. 가설에 맞지 않는 반증 사례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즉시 폐기된다.
과거 유럽 사람들은 모든 백조는 하얀색이라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이 관찰한 모든 백조가 하얀색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는 귀납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던 어느날 검은색 백조가 발견되었다. 그럼 가설은 바로 폐기된다. 경제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검은 백조’라는 용어가 나온 배경이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검은 백조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초기의 귀납 가설은 점점 더 강력한 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즉 시간이 흐르면서 반증사례가 나오지 않으면 점점 강력한 이론이 되는 것이 귀납가설의 특성이다.
진화론은 과학사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일으켰으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이론이다. 다윈의 출판 이후 엄청난 공격, 즉 반증 시도가 있었다. 여기에는 형이상학적 논리를 근거로 제시한 무의미한 공격도 있었고,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160년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하나의 ‘검은 백조’도 등장하지 않았다. 수많은 공격이 그 의도와 반대로 진화론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증명해준 셈이다. 진화론의 견고함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생물의 분류로 돌아가자.
린네는 ‘자연의 체계’라는 저서에서 당시 알려진 4천여종의 동물과 7천여종의 식물을 분류하였다. 이후 새로운 생물이 발견될 때마다 이 분류 체계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미생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DNA의 존재가 밝혀지고 유전자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분류와 눈에 보이는 형태학적 특징을 기반으로 한 기존 분류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 것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유전자 기반을 원칙으로 미생물까지 포함해 분류 체계를 다듬었다. 그러자 생물의 분류와 진화의 연관성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원숭이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생물 분류는 현재 존재하는 생물들을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생물들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서로의 연관성을 표시하면 과거에 벌어진 일들이 시간의 순서로 펼쳐진다. 생물들의 진화 과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나무라고도 불리는 계통수(phylogenetic tree)다. 이 나무를 관찰할 때는 뿌리에서 잎으로 가면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시간 개념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부여된다. 현재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위치는 가장 바깥에 달린 잎이다. 그리고 잎을 연결하는 가지들은 과거에 일어난 진화의 궤적이다.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은 과거의 존재했던 생물의 위치다.
계통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와 같은 현재 시간에 존재하는, 즉 바깥의 잎에 위치한 모든 생물은 우리와 동일한 진화의 시간을 거쳤다는 것이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도 우리와 동일한 진화의 시간을 거친 결과물이다. 현존하는 생물 사이에는 진화의 선후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계통수는 진화의 개념을 한 눈에 보여주기 위해 자주 이용되지만, 진화에 대한 많은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오해가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이다. 원숭이와 사람은 모두 잎에 위치한다. 그리고 두 잎의 가지를 따라 과거로 거슬러 가면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여기에 공통 조상이 위치한다. 물론 이 조상은 화석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과거의 생물이다. 따라서 원숭이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원숭이와 사람은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럼 잎에서 시작해, 가지들을 거슬러,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생명의 나무 뿌리에는 무엇이 놓여있을까? 뿌리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의 일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생명의 시작을 묻는 질문이 된다.
앞에서 유전자 분석 덕분에 생물 분류 체계는 점점 더 확고하게 다듬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이 변화 중 가장 큰 것이 ‘계’보다 더 포괄적인 ‘역’이 가장 상위에 추가가 된 것이다. 현대 생물학이 알려주는 생명의 시작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간단히 설명하면 역은 세포를 기준으로 삼는 가장 포괄적인 분류다.
단세포 생물과 다세포 생물의 차이
여기서 잠깐 생물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작은 생물은 결핵균이고, 가장 큰 생물은 미국삼나무다(더 작은 바이러스는 생물로 정의되지 않는다). 가장 큰 것이 약 10억배 크다.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생물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생물을 이루는 가장 작은 기본 단위를 찾아야 한다. 물체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가 원자인 것처럼 가장 작은 생명의 단위는 세포다. 물론 현대 물리의 표준 모형에 의하면 원자도 보손과 페르미온으로 더 잘게 분해된다. 그럼에도 물체에 질량을 부여하고 특성을 만들어내는 기능 단위는 원자다. 현대 생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세포는 세포 소기관, 더 자세히는 고분자중합체로 분해된다. 하지만 생명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소 기능 단위는 세포다.
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세포의 크기 차이일까? 코끼리는 쥐보다 크다. 그럼 코끼리는 쥐보다 세포가 더 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코끼리는 쥐보다 만 배 정도 더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어서 더 크다. 우리 눈에 보이는 쥐나 코끼리 나무 등은 모두 다세포 생물이다. 수많은 세포들이 모여서 하나의 생물을 구성하는 것을 다세포 생물이라 한다.
다세포 생물의 크기는 세포의 수와 비례한다. 포유류 세포의 평균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100배 작다. 이 보이지도 않는 세포가 엄청난 수로 모여 우리 몸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세포들은 모두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을 시작으로 복제-분열을 반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는데 이를 클론이라 한다. 현대 생물학에서 유전자를 기본으로 분류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다세포 생물의 장점은 버틸 수 있는 환경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세포들이 단순한 덩어리로 뭉쳐 다닌다고 이런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세포 생물의 세포들은 개체의 생존을 위해 각각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일종의 협력 집단인 다세포 생물은 개별 세포들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대사와 복제를 수행한다. 당연히 다세포 생물의 개별 세포들은 혼자서는 생존하지 못한다. 예외적으로 다른 세포와 소통하지도 않고 혼자 잘먹고 잘사는 놈도 있는데 이를 암세포라고 한다. 하지만 이 암세포도 단독으로 환경에 노출되면 죽는다.
이와 반대로 하나의 세포가 홀로 대사와 복제를 모두 수행하는 것을 단세포 생물이라 한다. 단세포 생물의 대표적인 것인 세균이며, 대부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다. 짐작 가능한대로 단세포 생물은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한 종류의 단세포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조금만 허용 범위를 벗어나도 죽어버린다. 단세포 생물들은 이런 환경 압력을 빠른 증식속도와 변이를 통해 극복한다. 그 결과 엄청난 다양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떤 극한 환경이라도 거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단세포 생물이 존재한다. 펄펄 끓는 온천, 비행기의 기름통, 극지의 얼음 아래 등 어떤 극한 환경이라도 생존 가능한 단세포 생물이 있다.
단세포 생물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우리에게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다. 우리 주변 환경에는 엄청난 종류의 세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중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람의 인체 환경이 생존 조건에 적절한 세균의 종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생물은?
단세포와 다세포 생물의 세포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람이나 나무 같은 다세포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의 공통점은 세포 내부에 유전자를 따로 보관하는 핵을 가지고 있다. 이를 진핵세포라고 한다. 반면 단세포 생물의 세포는 세포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를 원핵세포라 한다.
진핵세포이지만 단세포 생물인 경우도 있지만 다세포 생물이면서 세포핵이 없는 경우는 없다. 즉 세포핵은 다세포 생물의 필요조건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세포 생물의 경우 하나의 세포가 특정 기능을 가진 다양한 세포로 분화가 되어야 한다. 분화되기 전의 세포를 줄기세포라 하는데, 심장 근육, 신경, 면역 세포 등의 특화된 세포로 분화된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에서 필요한 정보가 적재적소에서 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핵이 없으면 복잡한 유전정보를 해당 세포의 기능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정교하게 조절하기 어렵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균과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단세포 생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었다. 세균처럼 핵이 없는 단세포 생물이지만, 이들은 우리 주변 환경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이 늦었다. 이들은 우리가 생명을 상상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에서 생존한다. 이들이 역에 마지막으로 추가된 고균이다,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해준다. 즉 세균이나 진핵세포보다 생명의 원형에 더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깊은 바다 속 화산 분화구 근처에서 발견된 고균은 생명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오래 전 광합성이 진화되기 전, 생명 에너지와 유기화합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 마그마가 끓어 넘치던 고온 고압의 깊은 바다 속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 생물학, 특히 유전자 분석에 의해 새롭게 추가된 생명의 가장 포괄적인 상위 분류인 세균 역, 고균 역, 진핵생물 역을 알아보았다. 그럼 더 근원적인 세포가 있었을까? 앞서 생명의 나무에서 설명했다시피 과거의 세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초의 생명은 상상의 영역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그 모습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바로 현존하는 생물들의 유전자를 통해서 가능하다.
유전자는 그 생물이 거친 진화 과정이 기록된 역사책이나 다름없다. 세균과 고균과 진핵생물의 유전자를 비교해 공통적인 유전자를 뽑아보면 근원세포가 가지고 있던 특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추정한 생명의 나무 뿌리의 가장 아래에 있는 근원세포를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고 부른다(위 그림).
다음 시간에는 유전자의 생명정보가 기능으로 발현되는 법칙인 생명의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통해 왜 과학자들이 LUCA의 존재를 확신하는지 알아보자.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의학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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