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63% ‘2030’… 미술관, MZ 핫플로 뜨다

유승목 기자 2023. 8.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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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도 관객도… ‘젊어지는’ 미술관
SNS에 ‘인증샷’ 올리기 좋고
대부분 무료거나 1만원 안팎
영화·공연에 비해 ‘가성비 갑’
미술관은 MZ세대 감성 맞춰
현대미술 전시 등 늘리는 추세
카텔란展으로 흥행몰이 리움
올 상반기 관객 절반이 2030
서울시립미술관 호퍼展 돌풍
방문 26만명 중 대다수 ‘MZ’
올해 상반기 열렸던 리움 미술관의 ‘카텔란:WE’ 전시에서 젊은 여성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리움 제공

“요즘 미술관이나 아트페어에 가면 젊은 여성들이 가장 눈에 띄죠. 작품 앞에 모여서 사진 찍는 모습도 익숙하고요. 여전히 미술 시장 ‘큰손’은 5060 중·장년층이긴 하지만, 2030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도 조금씩 존재감이 보여요.”

올해 미술계에서 가장 이목을 끈 전시를 꼽으라면 리움 미술관에서 열렸던 기획전 ‘카텔란: WE’를 들 수 있다. ‘현대미술 악동’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개념미술 거장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들을 모셨는데, 6개월의 전시 기간 동안 약 25만 명의 구름 인파가 몰렸다. 국내 대표 사립 미술관인 리움 개관 후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다. 현대미술의 맥락을 읽을 수 있는 기획전인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미술관과 관객의 소통 측면에선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전시의 흥행 키워드는 ‘2030 MZ세대’ ‘여성’으로 요약된다. 리움이 자체 조사한 결과 전시를 찾은 관람객 두 명 중 한 명은 20대(28%)와 30대(24%)였다. 전체 관람객 중 여성 관객 비중은 무려 80%나 됐다.

리움 관계자는 “전체 관람객이 아닌 일부를 조사한 결과이고 무료 전시란 점도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최근 전시를 찾는 젊은 여성층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젊어지는 미술관은 리움뿐이 아니다. 서울 주요 미술관마다 주말은 물론 평일 낮 시간에도 작품을 관람하는 젊은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국민화가로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관심을 끈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는 지난 4월 개막한 이후 여전히 하루 평균 3000명 이상이 찾고 있다. 지난 3일 기준으로 26만 명이 방문했는데, 관람객 대다수가 MZ세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반기에만 150만 명이 넘게 찾은 국립현대미술관(MMCA)도 연령대별 관람객을 조사한 결과 20대(37%)와 30대(26%) 비중이 높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만 놓고 보면 방문객 49%가 2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미술이 예술적 소양을 갖춘 부유층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옅어지고 여성을 중심으로 한 2030세대의 새로운 문화생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코로나19로 막혔던 문화향유 욕구가 분출하는 상황에서 미술관이 2030 여성들이 선호하는 인스타그래머블(SNS에 올릴 만한)·가성비·개성 3박자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고, 작품이나 미술관을 배경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는 것이다.

실제로 미술 전시 관람은 공연이나 연극, 영화 관람 같은 다른 문화예술 활동보다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대다수 전시가 무료거나 유료여도 1만 원 안팎이면 티켓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 여성 직장인 김모 씨는 “해외여행을 가서 일부러 유명 작가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에 관광을 가기도 하지 않느냐”며 “카텔란전만 해도 무료인데 오히려 안 가는 게 손해”라고 말했다. 최근 아트맵, 아트가이드 등 국내에서 진행 중인 전시 정보를 알려주는 온라인 플랫폼도 등장하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2030의 미술 전시 접근성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아트가이드 관계자는 “이용자 대부분이 젊은층”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관람을 2030 여성들이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전시 트렌드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젊은층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는 현대미술이나 독특한 주제를 다루는 전시를 선보이는 경우가 늘었다. 리움의 경우 카텔란전에 이어 작가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을 열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젊은 미술애호가들에게 한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은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끄는 스니커즈를 주제로 한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을 진행 중이다.

한국실험미술 거장인 이건용 작가가 지난 6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젊은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아트테크서도 ‘존재감’

경매 신규낙찰 24% ‘2030’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서 미술 관람이 새로운 문화생활로 자리 잡으면서 미술품 투자 시장도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들이 새로운 투자자로 시장에 진입하면서다. 여전히 미술 시장은 안정적인 자산을 형성한 5060 중·장년층이 ‘큰손’으로 이끌고 있지만, 저가 미술품을 노리는 젊은 수집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3대 경매사인 크리스티는 지난달 상반기 판매 실적을 밝히면서 젊은 세대가 신규 고객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상반기 구매 고객 중 31%가 신규 고객이었는데, 이 중 38%가 밀레니얼 및 그 이하 연령층이었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국내 메이저 경매사인 케이옥션은 미술 시장 호황기였던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신규 낙찰고객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20∼30대가 24%로, 과거보다 젊은층의 유입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2030 구매자는 대체로 저가 작품에 집중돼 전체 금액대는 안정적인 자산을 이룬 4050세대에 미치지 못한다”면서도 “시간이 지나 지속적인 컬렉터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미술 시장 성장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했다.

다만 새로 시장에 진입한 젊은 미술품 구매자들이 대체로 투자나 공간 인테리어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고 작품이 지닌 사회적 메시지나 작품 본연의 가치에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다. 한 신진작가는 “MZ세대가 가품, 진품을 중요하게 보지 않고 2차 시장에서 불법 아트상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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