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세터도 득점... 대한항공의 '이상한 배구', 선수-감독-관중도 흥이 난다 [구미 현장]
틸리카이넨 감독이 이끄는 대한항공은 6일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KOVO컵) 조별리그 A조 서울 우리카드와 첫 경기에서 세트 점수 3-0(25-21, 25-21, 25-19) 완승을 거뒀다.
주축 선수 7명이 대표팀 차출로 빠진 상황임에도 대한항공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배구를 보여줬다.
모험수처럼 보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강조한 틸리카이넨 감독의 선택이 다시 한 번 빛을 바란 경기였다.
대한항공은 김규민과 정지석, 임동혁, 김민재가 아시안게임 대표팀, 정한용과 송민근이 유니버시아드대표, 강승일이 19세 이하(U-19) 대표로 선발됐다.
이번 대회 단 10명으로 경기에 나섰다. 첫 경기 상대인 우리카드가 18명의 엔트리를 구성한 것과 대비됐다.
이어 "첫 휘슬이 울리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상대에게 절대 공짜로는 한 점도 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강점을 최대한 극대화시키고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 대회를 운영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경기에 돌입하니 선수층이 부족한 팀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만큼 대한항공은 부족함이 없었다.
블로킹에서 11-6으로 앞섰고 범실은 12-27로 안정감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리시브 효율은 66%. 37%에 그친 우리카드와 차이가 컸다.
숫자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선수들이 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고 효율적 배구를 위해 뛰었고 수 차례나 결실을 봤다. 심지어는 2세트 14-15 상황에서 세터 정진혁이 직접 공격에 가담해 득점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경기 후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은 "대한항공처럼 배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경기 후 만난 틸리카이넨 감독은 "우리가 가진 자원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 극대화하려고 했는데 그 부분에서 너무 잘해줬다"며 "리시버들이 잘 버텨줬고 그러다보니 세터가 공격 운영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파이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10명으로 정말 힘들텐데 똘똘 뭉쳐 경기를 하는 게 너무 잘 보였다"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경기 전부터 틸리카이넨 감독의 지목을 받은 이준은 양 팀 최다인 18점을 올린 뒤 "매번 같은 걸 하는 것보다 포지션 상관없이 많이 움직이면서 하는 게 재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세터가 2명이 동시에 투입되고 공격에도 가담했다. 평상시 경기 전후 좀처럼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던 토미 감독도 이날은 유독 신이 나 보였다. 그는 "같이 아이디어 공유도 하고 선수들과 함께 만들었다"며 "얼마나 창의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세터들의 능력이다. 오늘 경기만 봐도 상대편을 놀라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에 곽승석은 "(유)광우형이나 세터들과 많은 얘기를 한 것 같다. 공격수는 세터들 사인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답했다.
세터 정진혁의 득점 또한 충분히 예견된 장면이었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훈련 때나 연습경기를 할 때도 했던 부분이다. 잘 통했다"며 "(정진혁이) 전반적으로 이것저것 팀을 도와주기 위해서 훈련에 나섰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정진혁 득점에) 매우 기뻤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대회에 올 때 이 도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재밌게 하자고 했다. 오늘 경기는 정말 재밌었다"고 말했다.
정진혁의 득점을 옆에서 지켜본 이준은 "훈련하면서 많이 연습한 부분이다. 더블 스왑으로 한 적도 있었기에 오늘 같은 모습이 나왔다"며 "(곽)승석이 형이나 내가 득점했을 때보다 더 분위기가 오르는 것 같고 팬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팀에 플러스가 된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3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뤄낸 대한항공은 잘하는 선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그러나 대표팀에 주축 선수들을 떠난 보낸 뒤에도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확실한 효과를 보며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올 시즌도 틸리카이넨 감독의 대한항공에 대해선 벌써부터 기대감이 가득 차오른다.
구미=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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