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첫 폭로자 “내부고발 뒤 온갖 고초…지금도 같은 선택”
광주장애인지원센터, 구술집 발간
영화 ‘도가니’ 주인공의 실제 인물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장애인 인권을 위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행 사건을 세상에 처음 고발했던 전응섭(61·사진)씨는 광주장애인종합지원센터가 최근 발간한 ‘당신이 모르는 도가니 이야기’(작은 사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2005년부터 ‘도가니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했던 전씨와 졸업생, 학부모, 시민단체 관계자 등 13명의 구술 내용이 담겨 있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도가니’(2011)에서 전씨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 주인공 공유였다.
전남 완도 출신으로 일곱살 때 열병으로 청각장애를 갖게 된 전씨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광주 인화학교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인화원 생활재활교사였던 전씨는 2005년 6월 피해 당사자 ㅂ한테서 성폭행 피해 사실을 처음 들었다. ㅂ은 “인화원 한 생활재활교사가 ‘과자를 준다’고 불러 밤마다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사실을 학생부장 교사에게 이야기했지만, 학생부장은 “조용히 있어라”며 그를 제지했다. 전씨는 인화학교 졸업생 등의 연락을 받고 만나 ‘진실’을 전했다.
그리고 그해 6월21일 ‘광주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에 인화원 성폭행 사실을 알렸다. ‘도가니 사건’의 첫 외부 고발이었다. ㅂ은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 상담을 받았고, 소장은 경찰에 고발했다.
훗날 그는 학교 쪽이 사건 은폐를 위해 저지른 만행을 소문으로 들었다. “ㅂ을 식당으로 데리고 가 막걸리나 맥주를 마시게 해서 ‘나는 성폭행당한 적이 없고, 전응섭 선생님이 거짓으로 성폭행당했다고 말하라고 시켰다’는 식으로 세뇌했다고 해요. ㅂ을 생활관으로 데려가서 거짓으로 증언했다고 말할 때까지 반복해서 강압적으로 촬영했던 거죠.”
경찰은 수사에 혼선을 겪었다. 강압으로 촬영된 성폭행 피해 학생의 거짓 증언 영상이 전씨 등이 제출한 증거 진술과 상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화원에서 생활했던 졸업생 2명이 행정실장(법인 이사장 차남)이 피해자 ㅂ을 성폭행한 과정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화학교 행정실장은 전씨를 호텔 커피숍으로 불러 “원하는 것,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며 회유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전씨는 이후 ‘부당 해고’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구제받지 못했던 그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위원들은 “비리를 고발했으면 오히려 칭찬해줘야지 왜 해고하냐?”며 전씨의 손을 들어줬다. 2006년 6월 복직했지만, 법인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전씨를 괴롭혔다. “인화원 사회복무요원이 학교 지시에 따라 저를 감시하면서 화장실까지 따라다녔고요. 한 분을 제외하고 모든 선생님이 저를 왕따시키고 회피했어요.”
영화 도가니 상영 이후 수사에 반전이 일어났다. 2011년 경찰청에 인화학교 특별수사팀이 꾸려져 재수사가 시작됐다. 영화에서 행정실장이 피해 학생의 손발을 묶어 놓고 성폭행하는 장면은 2005년 경찰에서 수사했지만, 증거가 없어 처벌하지 못했던 실제 사건이다. 그런데 영화를 관람한 졸업생이 “당시 성폭행 실제 장면을 봤다’고 증언하면서 가해자인 행정실장의 마각이 드러났다.
전씨는 인화학교 피해자들이 2012년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전씨는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만 빼고 활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기 때문에 수어통역사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며 “수어통역사의 근무 환경 개선은 바로 청각장애인의 삶의 질과 직결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씨는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수어통역센터장으로 장애인 인권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한편, 2005~2011년 경찰·인권위원회를 통해 확인된 피해자만 최소 30명(성폭력 피해자 26명, 폭력 피해자 4명), 가해자는 인화학교 교장(법인 이사장 장남)과 행정실장, 교사, 인화원 생활재활교사 등 13명에 달했다. 2011년 11월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인화학교 및 우석 법인 관계자 14명을 형사입건하고 7명은 기관통보, 7명은 불기소 처분했다.
글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광주장애인종합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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