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저출산 대책 포장…논란 자초한 '1.5억 혼인 증여 공제'

김유승 기자 2023. 8.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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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찬스' 논란 등 상대적 박탈감 야기
정부, 저출산 대책 아닌 세제 합리화 취지 알렸어야
11일 서울 마포구 웨딩타운 드레스 샵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7.1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세법개정안' 내용 중 결혼자금 증여 공제액을 상향하는 안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부모가 자녀의 혼인을 지원하면 5000만원에 대해서까지 증여세가 면제됐지만 이를 1억5000만으로 상항하는 것이 개정안 골자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 일부 부자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부자감세론' 이라는 비판을 내놨고, 실제 상당수 청년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면서 논란이 들불처럼 번졌다.

물론 개정안은 그간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혼인 증여를 양성화했다는 점에서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중산층 부모가 자녀의 혼인 때 일정 부분 지원하는 것은 세법과 달리 우리의 일상적 가족 문화였고, 국가가 일일이 들여다보며 과세할 수는 없었다. 요즘 서울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이 5억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주택담보대출 받거나 자신의 자산을 처분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결혼 자금을 5000만원 이상 지원하는 일이 반드시 일부 부자만의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리 경제가 기나긴 둔화 터널을 걷고 있는 만큼 경기 활력 제고 차원에서 민간에 세 부담 완화 사인을 보내는 일도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가 이번 개정안을 단순 세제 합리화가 아니라 '출산과 결혼' 장려책으로 포장하면서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불을 지폈다는 점이다. 정부의 개정안이 소수의 부자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는 아니라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많은 청년들은 이러한 부모의 지원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출산과 결혼을 장려한다는 취지라고 밝히자 사회의 반응은 두 개로 갈렸다.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쪽은 환영했지만 '부모 찬스'를 누릴 수 없는 수많은 청년은 반대로 박탈감을 호소했다. 충분히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들 역시 자녀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머금었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오히려 청년들의 저출산 심리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까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 심리를 지적한다. 지난해 초혼 연령은 어느덧 남녀 모두 30세를 훌쩍 넘어서 남자 33.72세, 여자 31.26세에 달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청년들이 경쟁적 비교 과정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결혼을 뒤로 미루면서 나타난 면도 크다는 분석이다. 결혼과 관련한 상대적 박탈감 논란이 얼마든 실제 결혼·출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정부가 이번 안 목적으로 '결혼·출산 장려'가 아니라 민간 활력 제고 차원의 '세원 양성화' 정도로 제시했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커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0여년 전 기준인 5000만원을 현실에 맞게 상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1억5000만원을 넘는 부분에 대해선 과세 로드맵도 제시했다면 부자 감세 논란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이번 개정안의 효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결혼과 출산 장려에는 거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적어도 수천만원 이상 부모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 청년들이 몇백만원 수준의 증여세 부담을 피하고자 지금까지 결혼을 미뤄 왔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부는 저출산 대책은 청년이 부모의 지원 없이도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올해 초 지난해 0.78명으로 사상 최저를 경신한 합계출산율 발표 이후 사회에선 한동안 정부가 16년에 걸쳐 저출산 예산 280조원을 쏟아붓고도 효과를 못 봤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실제로 그만큼의 예산이 투입됐다기보다는 실질을 갖추지 못한 여러 정책들이 너도나도 '저출산' 대책으로 포장된 채 난립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이번 개정안이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유승 경제부 기자.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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