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로 얼룩진 신약개발 국책과제
개발자·임상 병원에 1년 가까이 숨겨
급성백혈병 신약 임상시험 과정에서 시험약제에 돌연변이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개발사가 통보없이 국내 대형병원 임상시험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신약개발 사업은 2013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으로 선정돼 2014년 9월부터 2016년 7월 말까지 임상 1상이 추진됐다. 연구사업 및 과제명은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급성백혈병에 대한 신규 항체치료제 DNP001의 임상 1상 개발’이다. 사업 주체는 ‘다이노나’라는 바이오벤처기업이며, 정부와 회사가 각각 20억2000만원씩 연구비를 댄 것으로 국책보고서에 돼 있다. 한때 장외주식시장 등에서 유망바이오벤처 회사로 주목받았던 다이노나사는 그후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돼 사라졌다. 과거 이 사업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인사들은 “임상노트 등 관련 기록은 다이노나사가 사라지면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기술을 이전받던 중국의 한 회사 임원이 다이노나사 측에 보낸 e메일을 확보했다. 이 e메일에 따르면 다이노나사가 개발한 항체치료제 DNP001의 DNA시퀀스에 심각한 돌연변이가 발견됐다고 e메일을 통해 통보한 것은 2015년 5월 27일이었다. 한국에서 이 치료제를 투여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임상시험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됐다. 2016년 8월 12일 범부처사업단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에도 돌연변이 발생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범부처사업단만이 아니다. 식약처, 임상시험 중이던 국내 대형병원에도 통보되지 않았다. 2015년 가을에 있었던 코스닥 상장 심사나 추가 펀딩을 위해 열렸던 2016년 기자회견 등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돌연변이’ 발생 사실 알리지 않은 회사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게 된 건 이 회사의 대주주였던 박성회 전 서울대 석좌교수가 각계에 관련한 진상규명을 호소하면서부터였다. 취재팀은 서울대 의대, 서울대병원 및 의료계에 퍼진 소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박 전 교수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DNP001의 원천기술 개발자다. 박 전 교수는 앞서 2015년 중국업체로부터 돌연변이 발생 사실에 대한 통보 내용을 1년이 지나 범부처신약개발사업 과제가 거의 종료되는 시점인 2016년 4월쯤에 알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취재팀이 확보한 e메일의 수신자나 참조인에는 박 전 교수가 포함돼 있지 않다. 뒤늦게 관련 정황을 파악한 박 교수가 임상시험 중단을 요구했지만, 임상시험 주체인 다이노나사 측이나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정 모 서울대 병리학과 교수는 “연구프로젝트를 주도하지 않았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다. 박 교수는 “단지 책임 회피·전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남아 있는 자료를 조사해보니 회사와 정 모 교수가 공모해 특허를 탈취하는 등의 기만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박 교수는 정 모 교수와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특허의 관리책임이 있는 서울대 산학기술협력단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백혈병 抗原(항원) 첫 발견” 1993년 11월 12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백혈병을 유발하는 혈액면역세포의 표면항원당단백질이 국내 학자에 의해 세계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기사다. 소아T세포 백혈병, 악성림프종, 성인백혈병을 일으키는 표면항원당단백질이 흉선미성숙세포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항체개발 가능성의 물꼬를 텄다는 내용이다. 이후 박 전 교수의 연구는 순풍을 탔다. 다시 2011년 박 교수팀은 무균돼지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해 당뇨 원숭이가 부작용 없이 6개월 이상 건강하게 생존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주요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2013년 2월 정년 퇴임한 박 전 교수는 다시 5년 임기의 서울대 의대 석좌교수로 임명된다. 항체치료제 개발 등을 목적으로 1999년 2월 설립된 다이노나사는 박 교수의 연구개발성과를 사업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박 교수는 2018년까지 이 회사의 대주주로, 회사의 주요임원들은 박 교수의 제자들이 맡고 있었다.
개발자 박성회 교수, “내겐 뒤늦게 통보”
“임상시험 중에 항체에 돌연변이가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됐으면 즉각 중단하고, 보고기관인 범부처신약개발단 등에 보고한 뒤 다시 하는 것이 맞다. 1년이 지나 임상시험이 거의 끝날 무렵에서야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고백을 들었다. 당시 충격도 컸고, 화가 많이 났다.” 지난 8월 2일 취재팀을 만난 박성회 교수의 말이다.
취재팀이 확보한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통보한 중국회사 임원의 2015년 5월 27일자 e메일의 수신과 참조인 중 박성회 전 교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건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관련해 이들이 주고받은 e메일의 전체 내용을 보면 뒤늦게 해당 사실을 인지한 박 교수가 전후사정을 밝히라고 정 모 교수에게 요구했고, 이에 정 교수가 2016년 4월 8일 해당 e메일을 박 교수에게 공유한 것으로 나온다. 의혹이 불거지고 나서 무려 11개월이나 흐른 시점이다. 다시 정 교수는 범부처에 신약개발 보고서 제출 1주일 전 시점인 2016년 8월 5일 박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낸다. 여기서 다시 이 문제에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언급한다.
“…문제는 임상시험 중단 과정에서 일이 커지면 회사에 누가 되고 제가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해임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잘못했으니 책임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임상시험이 종료되는 대로 다이노나사 이사 및 연구소장직은 사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잘못 처신해서 죄송합니다.”
그 뒤 정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정 교수가 언급한 잘못에 대한 책임은 다이노나사 사외이사 및 연구소장직 사임으로 갈음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취재진은 지난 7월 21일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정 교수를 만났다. 국책과제 연구보고서에서 왜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누락했냐는 질문에 그는 “보고서에 연구책임자로 내 이름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한 것은 당시 다이노나의 송 모 대표가 범부처 다른 연구과제를 맡아 다시 신청할 수 없어 개발이사·연구소장으로 돼 있으니 연구책임자로 내 이름을 올리자고 해서 그리 한 것일 뿐”이라며 “식약처 임상시험 승인신청은 송 모 대표이사 명의로 나갔다”고 답했다. 다음은 이날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그런데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에 제출한 다이노나 보고서를 보면 연구책임자 정OO이 보고한 것으로 명시돼 있는데요.
“그걸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맥락을 이해했으면 해서요.”
-그러니까 일종의 ‘대리인’ 같은 역할이었다는 말씀일까요.
“네… 왜냐하면 저는 다이노나사의 사외이사입니다. 월급도 안 받는. 상임도 아니에요.”
-교수님 주장을 요약하면 교수님이 명목상 책임자로 올라가 있지만, 임상시험을 신청한 송모 대표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입니까.
“네.”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나중에 작성된 보고서에는 왜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발생했다면 포함됐어야지요. 저희가 확보한 보고서의 결론을 간략히 요약하면 ‘1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으나 2명을 제외하고 뚜렷한 약효가 확인되지 않았다. 1상은 안정성 검증이 목표였으므로 2상에 들어가지 않고 중단됐다’ 정도의 내용입니다.
“포함 안 한 것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돌아가는 상황이나 경위에 대한 판단은 아까 말했듯이 저는 사외이사였고, 완전히 제3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박성회 교수님을 대신해 들어갔고, 판단은 경영진이 하는 거죠. 당시 다이노나는 기술이전과 상장을 추진 중이었는데 그게 무산되면 제일 손해를 볼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시 대주주가 박성회 교수였으니….
“박성회 교수와 또 누구일 것 같습니까. CEO입니다. CEO가 왜 크게 손해 보느냐, 주식을 날리면 그걸로 끝나면 좋겠지만 투자를 받을 때 보증을 섰어요. 그러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송 대표가 은폐를 주도했다는 겁니까.
“은폐를 주도했다는 것은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되니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몇 달 걸렸으니까.”
정 교수의 주장은 자신이 보고서에서 연구책임자로 언급이 돼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피할 순 없겠지만, 당시 돌연변이 발생 등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경영상의 판단’을 내린 주체는 다이노나사 측이었다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다.
서울대 정 교수 vs 다이노나 전 대표 서로에 책임 전가
취재팀은 이와 관련해 송모 당시 다이노나 대표를 지난 7월 말 세 차례 접촉해 입장을 들었다. 그는 “경향신문과 주간경향 취재팀이 취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정 교수로부터 들었다”라며 “정 교수의 주장에 대해 가감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씀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정 교수는 명목상의 연구책임자일 뿐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은 송 대표에게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습니다.
“그건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고요. 일반회사나 재벌 같은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주주의 의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이 회사(다이노나)는 대주주가 오너십을 가진 콘셉트이니까, 결국은 다 박성회 교수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고 봐야겠죠.”
-이상한 것은 중국회사로부터 받은 단백질 유전자 염기서열에 문제가 있다는 e메일을 보면 수신자나 참고인에 박 교수가 없습니다. 박 교수는 이 e메일이 수신된 2015년 5월로부터 거의 1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르러서야 정모 교수로부터 해당 e메일을 전달받고 인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우리 회사가 전라북도 익산에 있다가 2014년 9월에 서울로 이전했습니다. 그 이후 회사 미팅에 정 교수가 거의 매주 참석했어요. 모든 내용은 대주주가 보고를 받았습니다.”
-박 교수가 임상시험 중단을 지시한 시점은 2016년 4월입니다.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 정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내 임상중단을 지시했어요. 그 지시를 받고 정 교수는 다음 날 송 대표에게 e메일을 보내 ‘박 교수가 임상시험을 중단하라고 하신다’고 말하고요. 그러면 임상시험은 바로 중단했나요.
“바로 중단되진 않았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저희는 모른 상태로 e메일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에 시퀸싱을 하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확인해보니 전임상물질과 임상물질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처럼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사실 검증되지 않은 물질로 (중국 쪽에서) 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그러면 의혹 제기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회사만 알고 있었던 거네요.
“그렇죠. 진행은 그렇게 했고 임상시험 결과(약효가 없다는)가 확인되는 순간부터 임상시험을 빨리 종료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절차를 진행한 거예요. 우리도 DNP001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효능이 별로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효능이 없으면 이걸 중단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았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사태가 굴러갔습니다.”
-2015년 5월 중국에서 연락 온 시점부터 2016년 4월까지 계속 임상시험을 했다는 말씀인가요.
“내용을 알고 바로 중단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알아본 뒤 가장 빠르게 중단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송 대표는 중국으로부터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통보받고도 바로 임상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전후 사정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다행히도(?) 임상1상 시험은 약효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안정성, 즉 약을 투여했을 때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의 독성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주요과제인데, 안정성은 확인됐기 때문에 “안정성은 있지만 약효는 없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1상으로 임상시험을 중단하는 과정에서 식약처나 임상시험을 진행했던 국내 대형병원 등에는 2015년 5월 중국에서 보고된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따로 알리진 않았다. 7월 24일 송 대표의 말이다. “상식적으로 모든 것을 오픈하는 방법과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 꽤 그럴듯하고 모두에게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당장 코스닥 상장심사가 2015년 말에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에서 찬물을 끼얹고 모든 것을 공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그랬을 겁니다. 대주주도 전혀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사업에 정부 연구비가 22억원이 들어갔습니다. 어떤 문제가 벌어지면 보건당국이나 사업단에 빨리 그 사실을 공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처일 것 같은데요.
“그건 맞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데 이 경우는 효능이 없다는 걸 확인해야 했고, 당장 중단시킬 수 있는 명분이나 시기도 다소 그랬기 때문에 모두에게 좀 편안한 결론으로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식약처 등에도 따로 보고 안 해”
당시 보고 누락 의혹의 유력책임자인 두 사람(서울대 정 교수·다이노나 송 대표)은 각자 “자신의 책임보다 상대방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두 사람의 주장 중 공통적인 부분은 이 모든 결정이 대주주, 그러니까 애초 항체 개발자인 박 교수에게 있다고 얘기한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그러나 보고서 제출 1주일을 앞둔 2016년 8월 4일 박 교수에게 보낸 e메일에서 “임상시험 중 발생한 항체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내 책임이 크다”고 밝히고 있다. 7월 21일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정 교수는 ‘국책과제 연구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 아닐까’라는 질문에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연구 부정행위는 아니고 보고의무를 안 지킨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라며 “그런데 식약처에 대한 보고의무는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이노나 송 대표에게 있고 연구비에 대한 보고는 제 의무이니 그건 저는 그렇다(제 책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전 교수에게 11개월 가까이 보고가 지연된 것과 관련해서는 정 교수는 “회사가 잘됐을 때 이익 볼 사람도 두 사람(대주주였던 박 전 교수와 송 대표)이지만 제일 안 됐을 때 불이익을 당할 사람도 그 두 분”이라며 “문제가 생기면 일단 수습을 해보고, 대책을 만들어놓고 나서 말씀드리자는 생각에서 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더 이상의 언급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범부처신약개발 연구과제를 수행한 다이노나사의 임상시험 중 돌연변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1상이 마무리된 것과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변경되는 사항이 있다면 ‘의약품 임상시험 계획 승인에 관한 규정’에 따라 변경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규정을 보면 개발 중인 신약 등은 임상시험을 승인받을 때 항체의 염기서열과 같은 생물학적 성질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게 돼 있고, 변경승인 때도 마찬가지로 관련 자료를 제출해 보고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시점에서 해당 기업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만일 당시 고시된 규정의 내용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관련 규칙에 따라 행정처분 등의 조치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김태훈·박효순 정책사회부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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