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다리를 놓는 사람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지난 5월 금요일 저녁, 시민들과 '충전식 카드형 온누리상품권' 행사를 진행하던 중 문득 도심 한복판에 이 너른 터가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추억에 잠겼다.
대전 시민들이 가족, 친구와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각종 행사, 이벤트, 공연 등을 즐기는 대전엑스포시민광장은 엑스포과학공원을 돌아 나와 엑스포다리를 건너는 곳에 닿아있다. 광장을 지나 둔산 쪽으로 나가면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대전시립미술관, 한밭수목원, 평송청소년수련원이 자리하고 있어 문화, 체육, 각종 체험·여가활동을 한 군데서 누릴 수 있다.
이 일대는 1980년대, 당시 토지공사 주관으로 진행된 260만 평 규모의 둔산지구 개발과 맞물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둔산개발 기회를 활용해 대전을 상징할 만한 20만 평 정도의 대규모 공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당시 둔산신도시 개발 실무부서인 도시계획과장으로 근무하며 개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택지공간을 최대한 조성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녹지공간은 법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면적만 확보하면 되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당시 건설부 등 관계기관과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봉학 전 대전시장이 초지일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당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이인구 의원도 힘을 합했다. 토지공사에 이상희 사장이 새로 부임하며 최종적으로 20만 평의 둔산대공원이 확정됐다. 그렇게 한밭수목원을 비롯한 예술의 전당, 평송수련원 등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 공간은 지금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대전의 대표 장소가 됐고, 필자가 현재 재직 중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비롯한 정부·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에서 주최하는 공연·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며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곳을 조성하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해 다리를 놓는 사람들은 자기가 건너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후세가 건너가는 모습을 그리며 다리를 놓는다"라는, 행정가의 길을 걸으며 언제나 나의 지표가 된 이 문장을 실천했던 일이다.
고시 공부를 하며 행정법 첫 머리에서 읽고 마음에 새긴 구절인데, 현장 경험을 하며 그 의미를 몸소 이해하게 됐다. '자기가 건너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사람' 이것이 진정한 행정가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체득하게 된 것이다.
행정가로서의 일평생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듯이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사람.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다리를 놓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정을 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일평생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일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로 조성된 엑스포과학공원은 경제국장 시절 산업자원부 산하에 소속된 엑스포기념재단으로부터 기금 1000억 원과 함께 무상양여 받았던 장소다. 17만 평에 달하는 부지를 받을 수 있는 기본발상과 논리는 우리가 제공하고 이원범 의원, 이인구 의원과 같은 대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다양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이룰 수 있었던 성과다.
이외에도 공직자 동료와 더불어 각계인사들과 유림공원, 우주올림픽, 컨벤션센터, 장태산자연휴양림, 목척교르네상스 등 혼신을 다해 추진했던 일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행정가는 다리를 남기고 싶다. 자신이 놓은 다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쓰일 때 그만한 보람이 없다. 필자는 그런 확신으로 매사에 열정을 쏟았다. 원칙에 충실한 삶을 견지하다 보니 때로는 오해와 편견 앞에서 홀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그 다리를 기쁘게 건너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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