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선에 등장한 'K팝 스타'…팬들 "정치에 이용 말라"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표의 원천’ K팝 활용한 선거전략 구사
팬들 “정치와 무관·사회적 이슈만 가능”
스타 이용 말고, 미래·비전 제시 필요성
여당 대선후보 “K팝 스타 초청하려는데, 누구를 원하는지 알려 달라”→팬들 “절대 안 갈 것이고, 정치용 활용 용납 못한다.”→ 여당 “경제·관광 산업 기여 아이디어 모색이었을 뿐”→전문가 “K팝이 젊은 층의 표심 원천인 것은 알겠지만, BTS 등 K팝의 정신과 철학을 배워라”
인도네시아에서 내년 2월 선거를 앞두고 일부 대선 후보들이 K팝의 인기를 선거에 활용하려 하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현지 K팝 팬들이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정당과 후보들의 K팝 표심 활용 방안은 제대로 실현되지도 못했다.

인도네시아 정치권에서 K팝 인기를 활용하려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최근엔 여당 후보가 ‘K팝 스타 초청’ 방안을 공개했다. 팬들의 K팝 애정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었을 테지만, 후폭풍을 경험해야 했다.
버나르뉴스와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 투쟁민주당의 간자르 프라노워 대선후보가 트위터 계정에 “중부자바주 수라카르타(솔로) 시장이 K팝 스타를 초청하려고 하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누구를 초청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팬들이 추천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K팝 스타 초청은 자신의 선거운동 전략을 짜는 핵심 측근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솔로 시장이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기브란은 현직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아들이기도 하다.
젊은 유권자들은 간자르 후보의 의도를 간파했다. K팝 팬심을 선거의 표심으로 연결하려는 의미로 파악했다. K팝 인기 흐름에 편승해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쉬운 선거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본 것이다.

간자르 후보 측은 즉각 무엇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초청 제안의 글을 올린 다음날 “제안은 정치와 관련이 없다”고 글을 올려야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피드백과 조언에 감사드린다”며 “우리는 K팝이 중부자바의 경제와 관광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고 밝혔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한 셈이다.
◆ 블랙핑크 자카르타 공연 티켓 경품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최대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의 K팝를 향한 젊은 세대의 놀라운 인기를 표심에 활용하고자 했던 정당들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블랙핑크(BlackPink)의 자카르타 공연을 즈음해서는 정당들이 티켓 증정 방식을 통한 지지율 제고를 노렸다,
당시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의 대선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 측은 공연 광고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해 팔로워한 팬들 중에서 무작위 선정을 통해 콘서트 티켓을 증정하는 행사를 펼쳤다. 연정에 참여한 프라보워는 국방장관으로 차기 대선 지지율 선두주자다.
또 다른 야당인 인도네시아연대당(PSI)도 콘서트 티켓을 경품으로 내걸었다. 앞서 국가수권당(PAN)은 지난해 K팝 그룹인 아스트로와 공동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반면 조코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유세 당시 헤비메탈 음악 장르 팬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유력 정당과 정치인들의 K팝 활용 방안은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국 젊은이들의 K팝 ‘찐 사랑’ 때문에 모색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K팝에 대한 트윗 수 1위를 차지한 나라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전체 유권자의 60% 이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없는 아이디어도 짜내야할 판인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의 K팝을 향한 구애는 팬들의 반발 외에도 K팝 스타들의 정치 무관심과 인류 가치 증진을 고려할 때 효과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BTS의 팬인 마르얌 자밀라(35) 유력 정당의 K팝 활용에 대해 “우리의 아이돌이 정치 용도로 활용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지매체와 인터뷰에서 “(BTS는) 인도네시아 정치와는 무관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폭력반대, 아동보호, 양성평등, 보건 등 BTS가 끼치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활용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고 했다. 이어 “정치 캠페인과 관련된 어떤 콘서트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K팝 아이돌을 미끼로 사용하는 누구에게도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중년의 K팝 팬 드위 인다 미라난다(47)는 정당들의 K팝 스타 활용은 자신들의 정치적 프로그램 부족을 실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돌을 이용하는 것만이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냐”고 반문한 뒤, “정당과 후보들은 보다 창의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K팝을 이용하지 말고, K팝의 노력을 본받으라고 강조했다. 매력적인 음악, 가사, 공연, 팬 서비스를 통해 팬들과 아이돌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 K팝의 성과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이야기다. 그는 “많은 노래들이 정신건강, 자기수용, 괴롭힘과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들 노래의 가사는 듣는 사람들의 내적인 투쟁과 삶의 역동성을 동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K팝 스타들의 노랫말처럼 인도네시아 젊은 유권자들도 부패척결,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정직하고 깨끗한 정치지도자를 원한다고 밝혔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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