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인권 찾다간" 4년 전 이미 경고…범죄만 늘었다

정심교 기자 2023. 8.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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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묻지마'의 습격, 공포에 질린 거리]
17년 정신건강보건法 개정 후 입원 치료 문턱 높아져
입원 환자 매년 줄더니 21년 범죄 건수 6년 새 26.8%↑
의료계 "인권 보장 미명하에 치료 사각지대만 넓혀"
인재근 민주당 의원, 입원 치료 문턱 더 높인 개정법 발의

"이러다간 '제2의 안인득' 반드시 나온다. 환자를 적기에 치료하도록 정신건강복지법이 제대로 개정돼야 한다."

4년 전인 2019년 11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성명을 통해 내비친 '불길한 예감'은 2023년 현재, 적중했다. 지난 3일 서현역 인근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을 벌인 피의자 최 모(23) 씨는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점 외에도 안인득과 묘한 공통점이 하나 더 발견된다. 바로 '정신질환을 치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모 씨는 '분열성 성격장애'로, 안인득은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후 치료받다가 어느 순간부터 치료를 거부해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선 2017년 5월 개정된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찾아주려다가 치료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이 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건석(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 교수는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치료에 응하지 않는 정신질환자가 많아졌고, 안인득도 그중 한 명"이라며 "이번 불상사도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과연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어떤 허점이 숨어있을까?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비자의적 입원)' 요건이 기존보다 까다로워진 게 핵심이다. 기존엔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질환 증상이 심하거나, ▶환자 자신 또는 타인의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자·타해 위험성) 가운데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보호자가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입원 치료가 가능한 건 세계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7년 5월 개정된 법에 따르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비자의적 입원이 가능해졌다.

결국 정신질환 증상이 심해도 타인을 해칠 위험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 환자 동의가 없으면 어떤 치료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법 개정 전엔 정신질환 증상 정도가 심각하면 당연히 자·타해 위해성이 높아지므로 자·타해 위해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환자여도 입원 치료해 예방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법 개정 후엔 질환 정도가 심각해도 자·타해 위험성 없으면 환자 동의 없이는 치료를 강제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법 개정의 배경엔 환자의 '인권 보장'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사자(정신질환자)의 동의 없이 보호자가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고 입원 기간을 늘린 것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병원에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또 인권위는 해당 병원장에게도 "정신질환자의 신청 없이 '동의입원'이나 '보호 입원'이 이뤄지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인권 교육을 할 것"을 권고했다. 이건석 교수는 "이런 법체제 하에서는 자·타해 위험성이 현저하지 않을 경우 병원이 적극적인 방법을 취할 방법이 없다"며 "안인득 사건만 봐도 이 법 개정 이후인 2019년 4월, 그가 조현병을 장기간 치료받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졌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국내 정신질환 환자의 입원 치료율은 법 개정 후 실제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6년 2만3131명에서 매년 줄어 지난해엔 1만8212명으로 6년간 21.3% 감소했다.

반면 정신질환자의 범죄 건수는 늘었다. 경찰청의 '범죄 통계'에 따르면 정신장애 범죄자의 총 범죄 건수는 법 개정 전인 2015년 6980건이었지만, 개정 후인 2021년 8850건으로 6년간 26.8%나 증가했다. 특히 상해·폭행 등 폭력 범죄는 같은 기간 2218건에서 2917건으로 31.5%나 많아졌다.

정신건강의학계는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방치하면 자·타해 위험성이 증가하지만 치료받으면 그 위험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법 개정 전엔 정신질환자의 치료 의지가 없어도 강제적으로나마 치료할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회마저 없어져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자가 많아졌다"고 호소했다.

신경정신의학계의 이런 우려에도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을 없애 그들의 인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나왔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정신질환자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제도 신설 등을 내용으로 담은 개정법을 대표 발의했다. 인재근 의원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및 동의입원 제도를 폐지하고, 입원 적합성 심사제도와 정신건강심의위원회 구조 등을 개선해 입·퇴원 당사자의 의사를 보호하려는 게 법안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은 예방할 수 있으며,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또는 블루터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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