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 주식 기부한 아모레 서민정...컨설팅 업계 “지주사 중심 경영 효율화 과정”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의 장녀 서민정씨가 비상장사 이니스프리의 주식을 서경배과학재단에 기부하고, 이 주식을 다시 이니스프리가 되사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서민정씨가 예상치 못했던 휴직을 하고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차녀인 서호정씨의 지분이 늘어난 것까지 맞물려 승계구도 변화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회계 컨설팅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지주사를 중심으로 한 경영 효율화 과정에 집중하면서 나오는 현상에 더 가깝다고 분석했다. 가업승계보다는 체질 개선에 집중하면서 나오는 현상이란 뜻이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승계 문제가 아니라 아모레퍼시픽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드는 변화로 봐야 해석이 맞을 것 같다”고 했다.
7일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서경배과학재단은 지난 27일 보유 중이던 이니스프리 주식 2만3222주(9.5%)를 이니스프리에 매각했다.
서경배과학재단이 매각한 이니스프리의 지분은 지난 6월 서민정씨가 기부한 주식이다. 2012년 서민정씨가 아버지인 서경배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이니스프리 주식 일부가 서민정씨와 서경배 과학재단의 손을 거쳐 다시 이니스프리 자사주로 들어간 것이다.
매각가는 총 240억원 수준으로 서경배과학재단은 이 자금을 재단 활동에 활용할 계획이다. 서경배과학재단은 지금까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에게 아모레퍼시픽의 보통주와 우선주를 기부받아 운영해왔다.
재단 운영을 위한 통상적인 주식기부로 볼 수도 있지만 서민정씨의 주식 기부와 서경배과학재단 주식 매각에 이목이 쏠린 것은 기부주식이 상장사의 우선주가 아닌 비상장사 이니스프리였다는 점 때문이다.
그간 이니스프리 지분은 서민정씨가 앞으로 그룹 승계에 자금으로 쓸 종잣돈으로 해석됐었다. 이번 기부에 따라 서민정씨의 이니스프리 지분율은 8.68%로 줄었다. 서씨의 종잣돈이 줄었다는 점에서 승계 구도 변화까지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회계컨설팅 업계는 “아모레퍼시픽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전략 변화를 감지했다는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일단 서민정씨의 비상장 주식 감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에뛰드와 에스쁘아가 감자(주식 수를 줄이거나 액면가를 낮춰 자본금을 감소시키는 것)에 나서면서 서민정 씨의 지분율을 0%로 줄인 바 있다.
또 이니스프리 지분 매각이 궁극적으로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이익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니스프리는 서경배 과학재단에 장외 매각한 회사 주식을 매입한 것과 관련 “주주 환원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사주 취득”이라고 했다.
상장사의 경우 자사주 취득은 유통주식 수 물량이 줄어들면서 주가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상장사인 경우엔 다른 주주들의 배당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다. 자사주엔 배당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니스프리 주식은 아모레퍼시픽그룹(81.82%)과 서민정씨(8.68%)가 가지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배당이 늘어나면 그 혜택은 서민정씨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니스프리는 1002억원의 중간 배당과 67억원의 결산배당을 했다. 1069억원 중 아모레퍼시픽그룹 몫은 874억원 수준이다. 작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영업이익이 272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익명을 요구한 회계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지주사의 현금흐름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중저가 브랜드를 지주사 중심으로 편입시키고 라인업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점도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경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에뛰드나 이니스프리가 단종시키는 상품은 주로 판매 비중이 높지 않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이다. 한 제품군을 대표할 수 있는 제품 하나만 만들고 회전율을 높이는 것은 대표적인 이익 개선 활동이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사업 성장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본다”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판단한 기업이라고 판단됐다면 차라리 값이 좋을 때 재단에 넘겨 원했던 바를 구현하도록 재원으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승계 문제가 있었다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이나 아모레퍼시픽의 지분을 줄였을 것”이라면서 “그룹 주력 사업인 화장품 사업에서 경쟁력을 먼저 높이고 승계 그림은 나중에 그릴 것으로 봐야 해석이 꼬이지 않는다”고 했다.
증권사의 전망도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중·저가 화장품 시장보다는 뷰티 디바이스 사업 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모양새”라면서 “승계를 논하더라도 그 주체가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아닌 뷰티 디바이스 사업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달 27일 공시에서 자본금 5억원을 들여 주식회사 퍼시픽테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미용기계기구와 관련 기기의 제작·판매·수금대행, 통신 판매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업체다.
아모레퍼시픽이 기업 효율화를 꾀하는 이유는 화장품 업계 상황이 예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 냉각이 길어지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 큰 손이었던 중국 소비자를 찾기 힘들어졌다.
증권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영업이익 전망치를 내놓은 증권사들의 아모레퍼시픽 영업이익 전망치는 1980억원 수준이다. 지난 6월 말까지만 해도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3600억원 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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