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로 가는 은행들
2023. 8. 7. 06:03
동유럽권 교두보로 한국 기업 진출 활발해지면서 ‘역외 금융’ 수요 늘어
인구 4100만 명의 나라 ‘폴란드’가 최근 들어 경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국빈 방문과 함께 한국 기업 89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함께했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폴란드에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다. 가전, 자동자 부품,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양국 간 교역은 사상 최대치인 9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산업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지면서 금융 분야에서도 폴란드 진출을 향한 방아쇠가 당겨졌다. 과거 유럽에 진출할 때 제일 먼저 영국·프랑스·독일을 고려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은행권에서는 지난 5월 IBK기업은행이 폴란드 사무소를 개소하면서 한국 은행들의 폴란드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IBK기업은행은 3월 15일 폴란드 금융감독원(KNF)에서 사무소 설립 최종 인가를 취득한 후 두 달 만인 5월 16일(현지 시간) 브로츠와프에 사무소를 개소했고 유럽연합(EU)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무소가 진출한 브로츠와프는 LG에너지솔루션·포스코 등 한국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진출이 집중된 남서부 최대 공업 도시다. 이번 폴란드 진출은 김성태 행장 취임 후 첫 해외 사업으로, IBK기업은행은 폴란드 사무소 설립으로 13개국 60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게 됐다.폴란드를 시작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폴란드는 동유럽 전기차 배터리 생산 허브로 부상 중이고 한국의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이 진출해 있다”며 “IBK기업은행은 국책 은행으로서 관련 기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진출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폴란드개발은행(BGK)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투자금융(IB) 사업을 확대한다. BGK는 폴란드 경제·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1924년 설립된 폴란드 유일의 국책 은행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비에타 다신스카 무시즈카 BGK은행장은 지난 7월 1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BGK 본점에서 만나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 정보 공유, 인프라, 항공기, 부동산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글로벌 IB 사업 부문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 확대를 위한 금융 지원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개발·재건 사업과 관련해 향후 한국 건설사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미팅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금융 지원 확대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한 수출입은행도 폴란드 은행과 협업을 확대한다. 7월 13일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한국 기업의 폴란드 및 주변 지역 진출 지원을 위해 BGK와 손잡았다. 업무 협약에 따라 세 기관은 인프라·교통, 신재생에너지 등 중점 협력 분야 금융 지원 강화, 양국 기업의 제삼국 진출 시 공동 금융 지원, 기관 간 인력 교류 등에 협력하게 된다.
//EU의 새로운 금융 허브는 어디인가
그간 폴란드는 한국 은행들이 그다지 주목하던 국가는 아니었다. 2017년 우리은행이 카토비체에 사무소를 개소한 후 몇 년간 진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폴란드는 한국 은행권에서 과거와는 분명 다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는 폴란드가 갖는 여러 장점 때문이다. 폴란드는 EU 내 한국의 3대 수출국 중 하나다.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내수 시장을 보유했고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배터리 등 첨단 전략 산업 분야에 한국 기업이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K2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한국 방산 물자의 대규모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폴란드를 한국 방산의 ‘큰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폴란드는 삼해 이니셔티브(Three Seas Initiative) 의 의장 국가로 동유럽 국제 협력의 구심점이 되는 국가”라며 “최근 폴란드·헝가리·체코 등 동유럽으로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 한국 기업의 역외 금융 수요가 늘어났다”고 폴란드를 평가했다.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기업들의 폴란드 진출 의지가 강해진 것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수용함은 물론 우크라이나 지원 특별법을 마련해 우크라이나 난민의 폴란드 내 취업 등 정착을 지원해 왔다. 유럽 통계청에 따르면 1월 기준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액 규모는 0.63%로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일숙 KOTRA 바르샤바 무역관은 “폴란드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지리적 이점을 통해 우크라이나발 물자 보급 기지와 인도적 지원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향후 우크라이나가 복구와 재건을 통해 성장하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EU 후보국 지위를 얻은 우크라이나가 향후 EU 표준에 맞춰 산업을 재정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폴란드의 경험 공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 건설과 에너지 분야에서 재건이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무역관은 “한국 기업들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면밀한 정보 수집과 리스크 관리 방안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자 자연스럽게 은행권 역시 폴란드 진출을 통해 미리 금융권의 교두보를 놓겠다는 의도다.
은행권의 폴란드 진출은 달라진 유럽 각국의 위상과도 연관이 있다. 그간 유럽에서 금융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영국 런던이 2016년 EU 탈퇴, 즉 ‘브렉시트’ 이후 약화된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런던 대신 떠오르는 도시는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 등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채권의 중심지가 됐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 역시 그간 영국 런던이 수행했던 유럽 내 금융 허브를 차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폴란드는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후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영국에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전격 방문해 회담하고 폴란드 바르샤바가 차기 금융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폴란드가 유로존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프론트 오피스 중심의 금융 허브가 되기엔 한계가 있지만 미들 오피스 및 백오피스 형태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금융 업무를 바르샤바로 이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2018년부터 JP모간·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굵직한 글로벌 금융 기업들이 자사 금융 서비스 아웃소싱을 폴란드로 이전했다. 경제·지리적 상황과 함께 이러한 폴란드 정부의 노력은 폴란드로의 금융사 진출을 가속화할 것 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비즈니스 포커스]
인구 4100만 명의 나라 ‘폴란드’가 최근 들어 경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국빈 방문과 함께 한국 기업 89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함께했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폴란드에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다. 가전, 자동자 부품,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양국 간 교역은 사상 최대치인 9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산업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지면서 금융 분야에서도 폴란드 진출을 향한 방아쇠가 당겨졌다. 과거 유럽에 진출할 때 제일 먼저 영국·프랑스·독일을 고려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속도 붙는 은행들의 폴란드 진출
은행권에서는 지난 5월 IBK기업은행이 폴란드 사무소를 개소하면서 한국 은행들의 폴란드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IBK기업은행은 3월 15일 폴란드 금융감독원(KNF)에서 사무소 설립 최종 인가를 취득한 후 두 달 만인 5월 16일(현지 시간) 브로츠와프에 사무소를 개소했고 유럽연합(EU)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무소가 진출한 브로츠와프는 LG에너지솔루션·포스코 등 한국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진출이 집중된 남서부 최대 공업 도시다. 이번 폴란드 진출은 김성태 행장 취임 후 첫 해외 사업으로, IBK기업은행은 폴란드 사무소 설립으로 13개국 60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게 됐다.폴란드를 시작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폴란드는 동유럽 전기차 배터리 생산 허브로 부상 중이고 한국의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이 진출해 있다”며 “IBK기업은행은 국책 은행으로서 관련 기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진출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폴란드개발은행(BGK)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투자금융(IB) 사업을 확대한다. BGK는 폴란드 경제·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1924년 설립된 폴란드 유일의 국책 은행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비에타 다신스카 무시즈카 BGK은행장은 지난 7월 13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BGK 본점에서 만나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 정보 공유, 인프라, 항공기, 부동산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글로벌 IB 사업 부문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 확대를 위한 금융 지원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개발·재건 사업과 관련해 향후 한국 건설사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미팅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금융 지원 확대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한 수출입은행도 폴란드 은행과 협업을 확대한다. 7월 13일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한국 기업의 폴란드 및 주변 지역 진출 지원을 위해 BGK와 손잡았다. 업무 협약에 따라 세 기관은 인프라·교통, 신재생에너지 등 중점 협력 분야 금융 지원 강화, 양국 기업의 제삼국 진출 시 공동 금융 지원, 기관 간 인력 교류 등에 협력하게 된다.
//EU의 새로운 금융 허브는 어디인가
그간 폴란드는 한국 은행들이 그다지 주목하던 국가는 아니었다. 2017년 우리은행이 카토비체에 사무소를 개소한 후 몇 년간 진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폴란드는 한국 은행권에서 과거와는 분명 다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는 폴란드가 갖는 여러 장점 때문이다. 폴란드는 EU 내 한국의 3대 수출국 중 하나다.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내수 시장을 보유했고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배터리 등 첨단 전략 산업 분야에 한국 기업이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K2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한국 방산 물자의 대규모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폴란드를 한국 방산의 ‘큰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폴란드는 삼해 이니셔티브(Three Seas Initiative) 의 의장 국가로 동유럽 국제 협력의 구심점이 되는 국가”라며 “최근 폴란드·헝가리·체코 등 동유럽으로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 한국 기업의 역외 금융 수요가 늘어났다”고 폴란드를 평가했다.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기업들의 폴란드 진출 의지가 강해진 것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수용함은 물론 우크라이나 지원 특별법을 마련해 우크라이나 난민의 폴란드 내 취업 등 정착을 지원해 왔다. 유럽 통계청에 따르면 1월 기준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액 규모는 0.63%로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일숙 KOTRA 바르샤바 무역관은 “폴란드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지리적 이점을 통해 우크라이나발 물자 보급 기지와 인도적 지원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향후 우크라이나가 복구와 재건을 통해 성장하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EU 후보국 지위를 얻은 우크라이나가 향후 EU 표준에 맞춰 산업을 재정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폴란드의 경험 공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 건설과 에너지 분야에서 재건이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무역관은 “한국 기업들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면밀한 정보 수집과 리스크 관리 방안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자 자연스럽게 은행권 역시 폴란드 진출을 통해 미리 금융권의 교두보를 놓겠다는 의도다.
은행권의 폴란드 진출은 달라진 유럽 각국의 위상과도 연관이 있다. 그간 유럽에서 금융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영국 런던이 2016년 EU 탈퇴, 즉 ‘브렉시트’ 이후 약화된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런던 대신 떠오르는 도시는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 등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채권의 중심지가 됐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 역시 그간 영국 런던이 수행했던 유럽 내 금융 허브를 차지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폴란드는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후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영국에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전격 방문해 회담하고 폴란드 바르샤바가 차기 금융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폴란드가 유로존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프론트 오피스 중심의 금융 허브가 되기엔 한계가 있지만 미들 오피스 및 백오피스 형태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금융 업무를 바르샤바로 이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2018년부터 JP모간·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굵직한 글로벌 금융 기업들이 자사 금융 서비스 아웃소싱을 폴란드로 이전했다. 경제·지리적 상황과 함께 이러한 폴란드 정부의 노력은 폴란드로의 금융사 진출을 가속화할 것 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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