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정신보건 개혁이 필요하다[기고]

박효순 기자 2023. 8. 7.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기선완 가톨릭관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신림역과 서현역 부근에서 일어난 ‘묻지마 폭력’에 보통 사람들은 놀라고 큰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무고한 일반 대중을 향한 난폭한 행동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폭력이 정신질환과 연관이 되었음을 이야기하려면 아주 신중해야 한다.

급성기 혼란스러운 정신병적 상태에서 충동적이고 방어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할 수는 있을지라도, 정신질환을 앓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범죄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정신질환의 진단 이력이 설사 있더라도 당시의 행동과 정신질환과의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아무리 정신질환의 과거력이 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의 어떤 시기의 어떤 행동은 타고난 생물학적 기질, 과거 성장발달의 과정, 지금 대인관계 갈등 그리고 현재 그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의 총체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폭력적인 사건들은 아직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고 확실하게 단정할 수도 없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그런데 불쑥 사법입원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사법입원은 폭력의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들을 선제적으로 법을 동원하여 입원치료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긴 세월 동안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적 약자였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으며 쉽게 입원 가능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치료를 위하여 정신질환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경우라도 자의에 의하지 않은 강제 입원은 인신구속의 성격이 있으므로 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해 당사자가 아닌 공정한 법적 결정에 의해서만 입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사람을 가두는 결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사회적 상황에서 사법입원의 추진은 정신질환을 앓는 당사자들에게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법적으로 옭아매어 쉽게 입원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갖게 할 수 밖에 없다. 사법입원은 필요한 제도이고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안전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법적 관리로 보장이 될까?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은 개정 당시 실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 강제입원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계속 보호자와 의사의 책임으로 미루었으며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명확하지 않으면 입원시키기에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현실검증력이 없고 정신병적 증상이 분명하여 치료하면 그 환자에게 이득이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입원치료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입원치료가 다가 아니다. 사전에 환자들에 대한 지역사회 기반의 사례관리, 위기개입, 집중적인 외래 치료, 입원치료 이후에 재활서비스와 사후 관리 그리고 고용과 거주 등의 복지 지원 체계가 모두 부실하다. 의료급여 환자들은 입원 시에 아직도 치료비를 국가가 정액제로 지불하는 차별적 제도가 수십년 째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저가 입원비로 장기간 입원이 조장되고 있다.

핵심은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은 신속하게 발견되어 인권이 보장되는 수준에서 잘 치료받고 급성기 증상이 조절되면 퇴원하여 다양한 재활서비스를 지역사회에서 받으면서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탈수용화와 인권보장, 회복개념의 지역사회 치료재활로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의 수준은 아직도 이에 한참 못 미친다. 사법입원이 거론된 만큼 당장 정신응급체계를 필수의료로 인정하고 전면적으로 확충하며 이어서 담대한 정신보건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 ‘독보적인’ 자살 1위 국가이다. 포스트 팬테믹 시대에 누적된 피로감과 경제적 침체가 겹치면 정신건강의 최종적인 부정적 결과인 자살과 타해가 증가할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