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뇌가 뛴다]⑲ 난관 딛고 공학자 꿈 이룬 소년 “다시 사람 돕는 이로운 AI 꿈꾸다”

광주=이병철 기자 2023. 8. 7.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해곤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교수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할 공고 진학
우연히 발명동아리 가입, 로봇공학자 꿈 키워
삼수 끝에 연세대 진학, KAIST 석·박사 까지
지도 교수의 “사회를 위한 연구자 되라” 조언
사회를 위한 AI 연구에 뛰어 들어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1983년생이다.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생은 아직 젊은 실무진 축에 속하지만, 과학계에선 위상이 남다르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는 연구자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로 불린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들이 자신의 핵심 연구를 처음 시작한 평균 연령이 37.9세로 나타났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기초 과학과 공학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제2의 허준이’를 넘어서 한국의 첫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 그리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가 이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의 권위자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은 지난 5월 구글을 퇴사하며 자신의 업적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AI를 ‘나쁜 일’에 사용하려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는 하지만 AI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빠르다. 동시에 인간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도 떠오르고 있다.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AI를 도입한다는 소식에 작가조합은 지난 7월 파업을 시작했다. AI 기술로 만들어낸 딥페이크 영상으로 사기를 치거나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AI 기술의 위험성을 고려해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AI를 이용해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 중 한 명인 전해곤(38)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교수는 “재난, 안전사고 상황에서 AI의 도움을 받으면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 2일 GIST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사회를 위한 인공지능(AI for Social Good)’이라고 소개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AI의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지진 잔해 속에서 고립된 사람을 구하는 AI 로봇을 개발하거나 도시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으로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전 교수를 비롯해 몇 안되는 적은 수의 연구자만이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업성이 낮고 데이터를 구하기도 어려운 이 분야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질문에 그는 “석·박사 과정을 지도한 권인소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의 조언 때문”이라고 답했다. 권 교수는 그에게 “그동안 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좋은 연구자가 돼 보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형편이 어려웠던 권 교수는 취업을 위해 공고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로봇공학자의 꿈을 갖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교수가 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어린시절 꿈꿨던 로봇공학자는 아니지만, 이제 새로운 꿈도 꾸기 시작했다는 그는 당당히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전 교수는 “지도교수를 뛰어넘는 과학자가 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전해곤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교수는 이달 2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한 기술을 연구라"는 지도 교수의 조언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광주과학기술원

─'사회를 위한 AI’가 정확히 무엇인가.

“사회 안전과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비무장지대에 묻힌 지뢰의 위치를 추정하거나 산업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평가하는 알고리즘이다. 산업적인 가치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AI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대표적인 연구성과도 소개해 달라.

“2018년 경찰대와 함께 했던 연구가 있다. 범죄에 취약한 골목길을 예측해 집중 순찰 구역을 선정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범죄율을 결정하는 요소도 파악해 앞으로 도시 계획을 세울 때도 참고할 수 있다. 112 신고 데이터의 위치 정보와 구글 지도의 거리뷰를 활용해 골목길 하나하나의 위험도를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도로와 건물의 상태가 좋을수록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화재로 건물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찼을 때 영상 품질을 올리는 방법이나 건물 붕괴에서 사람들이 대피해 있을 위치를 추정하는 알고리즘도 개발했다.”

─의미 있는 연구지만,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니다.

“현재 AI 연구는 어느정도 상업화가 이뤄졌다. 대기업이 AI 연구를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다. 연구에 사용할 데이터도 부족하다. 골목길 연구도 단순히 112신고 위치 데이터만 갖고 시작했다. 이를 구글 지도와 연동하는 작업은 우리가 직접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범죄, 안전사고 데이터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연구자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전해곤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교수가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살펴본 골목길 안전 지도. 안전사고와 범죄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 도시 계획에 활용할 수도 있다./전해곤

─원래 관심있던 분야인가.

“선한 기술을 만들고 싶었다. 대학원에서 우연히 재난 로봇의 시각 센서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연구를 했다. 이 때가 처음 사회를 위한 AI 연구의 시작이었다. 연구를 마치기도 전에 학위 과정이 끝나 공동 연구하던 미국 카네기멜론대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에서는 이미 사회를 위한 AI 기술이 하나의 분야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공익에 관심 갖게 된 특별한 계기도 있나.

“석·박사 과정을 지도한 권인소 교수의 영향이 크다. 공부를 하면서 권 교수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공부했다는 점을 좋게 평가했던 것 같다. 권 교수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훌륭한 과학자가 됐다고 알고 있다. 그는 나에게 사회를 위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되라고 늘 조언했다.”

─어린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어린시절 꿈은 기자였다. 그런데 공부도 잘 못하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졸업하고 취업을 할 수 있는 공고로 진학했다. 우연히 들어간 학교 발명동아리에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악한 수준이지만 로봇을 만들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로봇만 만들었다.”

─결국은 취업 대신 대학에 진학했다.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께 대학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빚까지 내 과외를 받았다. 물론 제대로 된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3번의 도전 끝에 연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과외 선생님이 로봇공학자가 되려면 좋은 대학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한다는 조언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했다.”

전해곤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교수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자율주행 로봇을 설명하고 있다. 폐쇄회로(CC)TV 화면을 기반으로 보행자를 피해 충돌 사고를 줄일 수 있다./광주=이병철 기자

─다른 교수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사실 대학 성적이 좋지 않아 KAIST 석사과정 입학도 못 할뻔 했다. 그런데 다양한 경험을 좋게 평가받았다. 비록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당시에 경험들이 지금에 와서는 큰 도움이 된다. 석사 과정에 입학해 신호체계 개선에 관한 연구를 했는데, 결과물을 실물로 구현했다. 로봇을 개발했던 경험 덕분이다. 지금도 여전히 로봇공학자의 꿈을 갖고 있다. 내년에는 다시 카네기멜론대로 가서 로봇 연구를 할 계획이다. AI 기술을 적용한 자율주행]으로 충돌사고 없는 안전한 로봇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가 있나.

“사회안전지도를 만들고 싶다. 기존에 했던 것보다 세부적인 데이터를 활용해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이다. 다른 연구자들과 협업해 조금씩 진행하고 있는데 새로운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걷기 좋은 거리는 어디인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AI 연구가 상업화된 요즘 이런 연구는 대학에서만 할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연구자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영향력 있는 연구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연구자 커뮤니티에서 인정받거나, 피인용이 많이 되거나,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개발한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안전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가장 보람찰 것 같다. 이를 위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새로운 연구에 계속 도전해 나갈 것이다.”

전해곤 GIST AI대학원 교수는

2011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학사

2013년 KAIST 전자공학과 석사

2016년 삼성전자 휴먼테크 논문대상 은상

2018년 KAIST 전자공학과 박사

2018~2019년 미국 카네기멜론대 박사 후 연구원

2019~현재 GIST AI대학원 교수

2023년 삼성전자 휴먼테크 논문대상 특별상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