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코인판 증시의 광풍이 그치면

손철 기자 2023. 8. 7.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손철 투자증권부장
이차전지 이어 초전도체도 테마주 광풍
과한 투자쏠림에 '증시=도박판' 비판도
쩐의 힘으로 오른 주식 결국 거품 꺼져
위험 피하고 한발 물러서는 혜안 갖길
[서울경제]

테마주 광풍이 무더위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거래 대금은 하루 62조 2078억 원에 달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로 증시에 자금이 넘쳐나던 2021년 1월 11일(64조 8386억 원) 이후 역대 2위 수준이었다. 통상 거래가 한산한 휴가철 성수기에 주식거래가 폭발한 것은 올 초부터 시장을 달궈온 2차전지주에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급격히 몰렸기 때문이다.

특히 2차전지주 폭등의 한복판에 있는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에이치엔 등 에코프로그룹 상장 3개사는 당시 주가 최고점 기준 시가총액이 99조 7705억 원에 달했다. 에코프로 3총사로 불리는 이들 기업의 시총은 8월 4일 종가 기준 70조 원 정도여서 일주일 만에 30조 원이 증발했다. 그래도 이들 3개 종목의 시총 합계는 올해 첫날 거래 직전에는 12조 3000억 원에 그쳤으니 7개월 만에 58조 원이 급증한 셈이다. 올 들어 에코프로그룹 3개사의 시총 증가액은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몸값을 6배 이상 웃돌고 있다.

테마주 열풍은 지난주 급기야 기술 검증도 끝나지 않은 상온 초전도체로 옮겨 붙었다. 서남·덕성·서원 등의 상장사 주가가 일주일 만에 2~3배 급등했는데 ‘꿈의 물질’로 불리는 초전도체 기술 검증은 물론 회사와 초전도체 간 사업 관련성도 제대로 따지지 않은 ‘묻지 마 투자’였다. 하루 평균 2억 원 정도 거래되던 서원 주식은 8월 들어 거래 대금이 932억 원까지 폭증했다. 서남이나 덕성의 관계자들은 정작 회사 사업이 상온 초전도체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손철 투자증권부장

한국 증시에서 특정 종목이나 업종에 대한 투자 쏠림이 자주 나타나듯이 해외 증시에서도 테마주 열기를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을 거느린 미국에서도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행성으로 주가가 오르는 ‘밈 주식’으로 분류된 게임스톱이나 AMC 등의 주가가 코로나 팬데믹 속에 수개월 만에 수십 배가 오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주가”라는 혹평을 샀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는 그럴수록 더 늘었다.

일부 테마주의 하루 주가 등락 폭이 40~50%에 달하는 일이 최근 비일비재하자 “증시가 코인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심심치 않고 일각에서는 ‘도박판’으로 격하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단기 주가 급등에 합리적 이유도 없이 일시에 몰린 돈의 힘으로만 뛰어오른 종목들은 결국 거품이 꺼지고 주가 상승 폭을 대부분 반납하기 일쑤였다.

코로나 쇼크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으려 한국은행이 2020년 5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50%로 낮추고 이를 1년 이상 지속하자 코스피 상승률 상위 5개 종목의 주가가 2021년 초반 2~3배의 수익을 낼 정도로 올랐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 종목의 수익률이 추락한 것을 개인투자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임스톱과 AMC도 반짝 급등 후 주가 폭락을 면치 못했음은 물론이다.

테마주가 요동을 치면 거래량 급증으로 앉아서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증권사들이 최근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고평가됐다며 ‘나쁜 주식’이라는 직격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의 합산 시총이 양극재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을 넘어섰는데 도저히 이를 설명할 논리가 없다는 ‘탄식’ 같은 분석이 나올 정도다. 한국 증시를 분석하는 일로 30년을 보낸 베테랑 애널리스트는 “최근 2차전지주 광풍과 쏠림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상한 투자 행태”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포모(FOMO·상승장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공포감)’로만 2차전지나 인공지능(AI) 관련주에 투자한 개인이 있다면 지나치게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2차전지주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시장의 평가가 낮을 때 사서 통찰력을 발휘한 ‘스마트 개미’라면 이제는 테마주 광풍에서 거리를 둘 때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 계속해서 오르는 주식은 있을 수 없다. 테마주로 적잖은 수익을 챙긴 개인투자자들이 “잠시 쉬는 것도 또 다른 투자”라는 증시 격언을 새겼으면 한다.

손철 기자 runiron@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