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격돌' 김연경·박인비·진종오, IOC 선수위원 도전장
대한체육회가 지난 4일 2024 파리올림픽 IOC 선수위원 한국 대표 후보자 추천을 마감한 결과 배구 김연경(35), 골프 박인비(35), 태권도 이대훈(31), 사격 진종오(44), 양궁 오진혁(41), 배드민턴 김소영(31)등 총 6명이 출마 신청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내년 7월 파리 하계올림픽 기간에 진행될 IOC 선수위원 선거에 참가할 한국 대표 후보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모두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배구여제’ 김연경은 2012 런던올림픽과 2021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4강 신화’를 이끌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 터키, 중국 등 해외 무대에서 세계 최고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사격 황제’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 대회까지 올림픽 금메달만 4개를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 최다 올림픽 메달 공동 1위에 올라있다. 현재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공동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다.
‘골프 여제’ 박인비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다.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4대 메이저 대회 포함,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21승, 세계 투어 통산 29승을 수확했다. 여자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색없다.
한국 태권도 간판 이대훈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3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은퇴한 뒤 대표팀 코치로 변신했다.
오진혁은 런던 올림픽 개인전과 도쿄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남자 양궁 간판이다. 2012 런던 대회 단체전에서도 동메달을 견인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5개나 일궈냈다.
김소영은 도쿄 올림픽에서 공희용과 동메달을 합작한 배드민턴 여자 복식의 대표주자다. 현재로 세계 배드민턴 여자복식 1, 2위를 다투고 있다.
쟁쟁한 선수들이 앞다퉈 나선 이유는 IOC 선수위원이 그만큼 이 중요하고 위상이 높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IOC 선수위원은 스포츠계 최고의 명예직으로 꼽힌다. IOC와 선수들 사이 가교 역할을 하는 위치로 최대 23명으로 구성돼있다.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의무를 지니며 스포츠 외교에 기여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인 만큼 혜택도 많다. IOC 위원과 동일하게 올림픽 개최지 결정권 등 권한을 지닌다. IOC에서 파견한 대사로 인정받기 때문에 업무에 관한 한 국가, 조직, 법인 등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고 자주성을 행사할 수 있다. 해외여행시 국빈급 대우를 받고 IOC 회원국가에 입국할 때는 비자 없이 입국이 허가된다
IOC 총회에 참석할 때는 개최 국가로부터 전용 승용차와 안내요원이 배정된다. IOC 선수위원이 탑승하는 차량과 머무는 호텔에는 해당 IOC 선수위원 국가의 국기가 게양된다.
정원은 국가당 한 명이다. 한 나라에서 IOC 선수위원이 당선되면 임기 8년 동안 그 나라 출신의 다른 선수는 선수위원이 되는게 불가능하다.
한국은 탁구선수 출신 유승민 선수위원이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선수위원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추가로 선수위원을 배출할 수 없었다. 유승민 선수위원이 내년 파리 올림픽을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 만큼 한국도 새로운 선수위원을 탄생시킬 기회가 생겼다.
IOC 선수위원은 매 하·동계올림픽 기간 중 참가 선수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당선자는 폐회날 발표된다. 해당 올림픽 혹은 직전 올림픽에 참가했던 경력이 있어야 후보에 출마할 수 있다. 매 올림픽 때 4명(하계)또는 2명(동계)의 위원이 선출된다. IOC 선수위원에 당선되면 폐회식에서 올림픽 선수단을 대표로 자원봉사자 대표들에게 직접 꽃다발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다.
대한체육회는 내부 검토 등 절차를 거쳐 한국 후보 1명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선수 후보로 최종 추천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영어 능력이다. 8년 전 유승민 선수위원이 당시 경쟁자였던 역도 장미란, 사격 진종오를 제치고 최종 후보가 된 결정적인 이유가 영어였다.
당시 체육계에서는 진종오나 장미란을 제치고 IOC 선수위원에 뒤늦게 도전한 유승민이 최종 후보가 되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진종오는 오래전부터 IOC 선수위원의 꿈을 키워오고 있었다. 장미란 역시 ‘장미란재단’ 활동으로 스포츠 행정가로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유승민은 그 도전 자체가 의외로 평가됐다.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선수 시절 업적을 비롯해 일반 평가 항목 10개 등에서 가장 앞선 주인공은 진종오였다. 하지만 유승민은 가장 배점이 높았던 영어 항목에서 진종오를 월등히 앞섰고 뒤집기에 성공했다.
진종오의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었지만 유승민의 실력이 훨씬 탁월했다. 유승민은 18살 때인 지난 2000년부터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크로아티아, 중국 등 해외리그에서 뛰면서 영어가 몸에 익었다. 당시 대한탁구협회장이었던 고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도움을 받아 영어 면접도 철저히 준비했다. 덕분에 외부에서 초청된 영어 전문 면접관으로부터 고득점을 이끌어냈다.
실제로 IOC가 규정한 후보 자격 요건에는 ‘영어 능통’이 명시돼있다. IOC와 관련된 각종 국제 회의나 행사에서 자기 의견을 영어로 적극적으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하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별로 선정된 IOC 선수위원 후보는 IOC 관계자로부터 영어로 전화 인터뷰 심사를 받는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각종 회의가 전화나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유승민의 영이 실력은 더 빛을 발했다.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이었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못하게 되자 그 자리를 유승민 선수위원이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번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 후보 가운데 김연경과 박인비는 해외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영어 구사에 전혀 문제가 없다. 진종오는 국제사격연맹 선수위원직을 역임할 만큼 국제 활동 경험이 많다. 그래서 누가 최종후보가 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유승민 선수위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영어를 많이 공부했다 하더라도 IOC 회의 현장에서 발언하고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IOC 위원이 해야 할 역할을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을 내려놓은 채 봉사할 마음이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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