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단 현장 철근공 “작업 중 붕괴 지점 ‘철근 누락’ 우려 있었다”
“지금이 1980년대도 아니고 2023년에 철근 빼먹기가 어떻게 가능한건가요?”
지난달 5일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조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온라인 상에는 이같은 물음이 줄을 이었다.
사고가 난 아파트는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시공능력평가 5위인 GS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건설현장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그럼에도 구조설계 결과 전단보강근이 필요했던 기둥 370개소 중 실제로 시공이 된 기둥은 21%인 78개소에 불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서는 건설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철근 빼돌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철근 누락이 있었음이 알려진 후에는 LH 전관들이 포진된 설계 업체들의 ‘이권 카르텔’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가능한 해석이긴 하지만, 건설 사고 원인은 어느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검단 아파트 사고 현장에서 작업을 했던 노동자 A씨의 증언을 통해 사고 원인을 되짚었다. ‘공기 단축’과 ‘원가 절감’이라는 건설 현장의 해묵은 관행은 2023년인 지금도 노동자들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 ‘철근누락 위험성’ 미리 알았다
A씨에 따르면, 현장 철근 작업자들은 보강 철근 누락 사실과 이로 인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A씨는 “현장에 화물차 1~2대 분량의 전단보강근 물량이 들어와 있었는데 도면 상에는 (붕괴 지점만) 빠져있었다”며 “당시 작업자들끼리도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A씨는 “사고가 난 현장 감리도 제일 깐깐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작업자들이 (빠진 부분에) 철근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냈고 감리도 이에 동의했다”며 “감리가 현장소장에게 이야기해 시공사가 설계사에 구조 검토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B 설계사가 시공사인 GS의 구조 검토 요구에 ‘전단보강근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회신을 했다고 한다. 철근 누락을 발견할 기회를 두 번이나 날려버린 셈이다. 남은 철근은 결국 한동안 현장에 방치돼있다가 결국 수거됐다고 A씨는 전했다.
검단 아파트의 경우 발주처(LH)와 시공사(GS)가 ‘시공책임형(CM)’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설계서를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할 업무까지 시공사가 주관하게 된다. 하지만 설계 도면 자체에 오류가 있을 경우 이를 바로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시공사 측은 주장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시공사의 역할은 도면대로 시공을 하는 것이고, 감리도 이를 중점적으로 본다”며 “시공사가 설계 변경을 요청할 땐 도면 상 배관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기둥이 있는 등 시공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반복되는 설계 오류와 ‘전문성 부족’
전문가들은 설계 오류가 반복되는 배경으로 설계 인력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했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설계사가 용역을 수주한 후 구조설계나 도면작성 등 업무만 쪼개 재하청을 주는 구조가 비일비재하다”며 “당연히 제 값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함량 미달인 기술사가 구조설계를 담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B설계사가 구조도면 작성 업무를 ‘무자격 업체’에게 맡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선엔지니어링은 2020년 붕괴사고가 났던 인천 검단 AA13-2BL 공동주택의 설계용역을 포함해 LH에서만 4건의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계약금만 모두 합쳐 140억 규모다.
전관을 앞세워 여러 프로젝트를 한번에 수주한 뒤, 저렴한 가격을 부르는 영세한 건축사에게 일부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과정에서 부실 설계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B설계사는 LH·조달청·국토부 등의 다수 전관을 영입해 ‘전관예우 의혹’이 불거진 업체이기도 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축법에는 건축사가 설계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되, 구조설계가 워낙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임을 감안해 구조기술사와 ‘공동서명’을 하게 되어있다”며 “건축설계와 구조설계는 엄격하게 분리되는 공정이 아니고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일각의 표현처럼 하청이나 도급을 주는 구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도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는 단계”라고 했다.
공법은 발전하는데… 낮아지는 기술공 숙련도
문제는 설계 뿐 아니라 시공 단계에서도 발생했다. 사조위가 붕괴지점 기둥 32개소 중 확인 가능한 8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인 4곳은 설계 도면에 그려져있음에도 시공 단계에서 전단보강근이 누락됐다. A씨 역시 “전단력이 강한 기둥부에서 보강근을 몇개씩 빼고 시공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고 했다.
이 역시 비용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A씨는 설명했다. 그는 “검단 현장에서도 철근 계약을 맺은 단종사(전문건설업체) 밑에 ‘철근 오야지’가 따로 있었다”며 “단종사가 공사비 일부를 ‘먹고’ 오야지에게 일감을 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하도급이 여러 단계 반복될수록 실제 투입되는 공사비는 점점 줄어든다.
30년 경력의 한 철근공 C씨도 “돈을 남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인건비가 싼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것”이라며 “한국인 기능공 일당이 25만원이라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국교포는 23만원, 베트남·미얀마 등 동남아 인력은 20만원을 받는다. 요새 현장에 가면 대부분이 동남아 인력”이라고 전했다.
현장 노동자들의 숙련도 저하는 사고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C씨는 “무량판 구조는 레고처럼 정교하게 시공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균형이 허물어지면 균열이 난다”며 “(무량판 구조 자체가 위험하다기보다) 제대로 시공이 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외국인 노동자들은 도면을 잘 읽지 못하고 한국어도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철근 팀장이 ‘어디에 무엇을 넣으라’고 하면 일단 ‘오케이’를 한다”고 말했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작업을 서둘러야 했던 것도 부실 시공 위험을 높인다. A씨는 “붕괴 사고가 난 검단 현장의 경우 다른 곳보다는 좀 많이 서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4개월 가량 공기가 늦어지면서 야간 작업도 굉장히 많이 해야 했다”고 전했다.
‘기승전 무량판’ 대책이 문제인 이유
검단 사고 이후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은 대체로 ‘무량판 구조’에 집중돼있다. 정부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LH아파트에 이어 민간아파트 293곳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무량판 구조를 특수구조물로 포함해 안전 확인 절차를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는 철근 누락 외에도 콘크리트 강도가 기준치에 미달했고, 조경공사 과정에서 기준치보다 더 무거운 흙이 사고 지점에 일시에 쏟아지며 발생한 ‘총체적 부실’이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결국 모든 사고는 안전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에 대한 불안만 키우는 방식의 대책을 경계했다. 박문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발주처인 LH가 기술인 단가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철근 누락보다 중요한 것은 원가를 아끼기 위해 저렴한 골재를 쓰면서 콘크리트 강도가 기준치보다 낮아진 것”이라며 “무량판 구조 자체를 문제로 몰면서 벽에 둘러싸여 붕괴 위험이 낮은 주거동까지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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