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물가 잡겠다는 정부, 시장 개입이 최선일까

연희진 기자 2023. 8. 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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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오르는 건 쉬워도 내리는 건 어렵다.

연일 인상 소식만 접했던 소비자로서 가격 인하 뉴스는 반갑다.

소비자로서 가격 인상이 달가운 것은 당연히 아니다.

물가 안정을 지향한다면 품목을 콕 짚어 가격 인하를 주문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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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오르는 건 쉬워도 내리는 건 어렵다. 연일 인상 소식만 접했던 소비자로서 가격 인하 뉴스는 반갑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리길 바란 건 아니었다.

사는 게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 오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1.20(2020=100)다. 2020년과 동일한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동일한 양만큼 소비한다고 가정할 때 예상되는 총 비용이 2020년에 비해 11.20% 증가했다는 뜻이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3% 올랐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5.2%를 기록한 뒤 오름폭이 둔화하는 추세지만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체감 물가가 높은 것은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4.7% 늘었지만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0.0%로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먹거리 물가부터 '저격'했다. 시작은 라면이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18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라면 가격을 인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라면값 담합 여부 조사를 주문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분업체를 소집해 밀가루 가격 인하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말은 "내렸으면 좋겠다" "협조를 부탁한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이런 말과 행동을 압박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라면업체들은 백기를 들었다. 7월1일부터 주요 라면 3사(농심·오뚜기·삼양식품)의 일부 제품 가격이 인하됐다. 개별 품목으로 볼 때 인하 폭은 40원에서 130원 정도로 소비자가 체감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라면 가격을 내린 정부의 다음 타깃은 우유로 보인다. 원유(原乳) 기본가격이 1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인상됐다. 정부는 원윳값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우유 제품의 가격이 최대한 오르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낙농진흥회는 7월27일 ℓ당 음용유는 88원, 가공유는 87원 인상하는 안에 잠정 합의했다. 이번 인상 폭은 원유 가격 연동제 시행 이래 가장 많이 상승했다. 음용유용 기본가격은 ℓ당 1084원, 가공유용 기본가격은 ℓ당 887원으로 각각 결정됐다.

원윳값 인상이 결정된 다음 날인 7월2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유업계를 소집했다.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은 "원유가격 인상이 과도한 흰 우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업계가 적극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업계는 원유 가격 인상 및 제조경비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이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의 압박으로 가격 조정을 망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물가는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개별 품목에 대해 인하를 거론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며 "기본적으로 물가는 통화정책으로 제어하는 것이 맞다"고 짚었다.

소비자로서 가격 인상이 달가운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특정 품목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식의 물가 정책에는 의문이 든다. 당장은 가격을 억누를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제까지나 통할 수는 없다. 인상 요인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 기업도 힘들어지고 나중에 한꺼번에 반영됐을 때 소비자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물가 안정을 지향한다면 품목을 콕 짚어 가격 인하를 주문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연희진 기자 to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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