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C 외치던 나이키, 왜 도매업체에 숙이고 들어가나? [티타임즈]
아마존, 백화점, 운동화 매장 등 도매업체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자사몰을 강화했던 나이키가 최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도매업체들과 관계를 복원하며 물건을 대대적으로 넣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 트렌드를 빨리 읽고 신속하게 제품을 출시하며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겠다는 D2C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 D2C의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나이키가 도매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건 지난 몇 년간 나이키가 보여준 행보 때문이다. 나이키는 아디다스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2017년 경쟁력 강화 전략인 '트리플 더블'을 선언했다. 혁신의 속도와 강도를 2배로, 제품 출시 속도도 2배 빠르게,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비중도 2배로 하겠다는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 소비자에 직접 판매하는 D2C 강화였다. 당시 전 세계 3만 개에 달하던 도매 파트너들을 딱 40개만 남기겠다고 선언하며 대거 관계를 정리했고, 아마존과도 결별하는 등 본격적으로 D2C 전환에 속도를 냈다. '나이키의 모든 제품은 나이키가 직접 판다'는 목표로 내달린 결과, 나이키 전체 매출에서 도매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85%에서 2022년 58%까지 줄어들었다.
나이키는 도매 업체들이 나이키 제품을 가져다 특색 없이 팔고, 할인을 반복하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했다. 유통업체가 독식했던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출시하는 것이 더 나은 고객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소비자에게 제품이 전달되기까지 물류와 배송, 재고 등 공급망 관리와 광고비, 각종 서비스 비용 등 모든 과정에서의 책임이 높아진다는 것이 D2C 모델의 단점이다. 시장이 안정적이라면 나이키 정도의 회사에서 이런 단점은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엔데믹을 겪으며 시장의 수요-공급은 예상치 못하게 출렁거리고 있다. 2021년 연말 쇼핑 대목에는 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선반이 텅텅 비더니, 공급량을 늘린 2022년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수요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공급 과잉으로 제품이 넘쳐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형 도매 파트너에게 재고를 넘길 수 있는 다른 제조회사와 비교하면 나이키에 과잉재고는 더 큰 부담이다. 2022년 하반기 도매 파트너들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펼쳤지만, 2023년 5월 기준 나이키의 재고는 89억 달러어치.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28% 높은 수준이다.
반면 DSW, 메이시스만 해도 각각 미국에 500개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풋락커는 미국에 871개, 전 세계로는 2700개나 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나이키가 도매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이들 매장에 나이키 제품이 진열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고객과의 접점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나이키가 자사몰에 집중하는 동안 경쟁사인 푸마, 리복, 아디다스가 도매 파트너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아디다스의 경우 나이키의 D2C 전략을 보고 자신들도 2025년까지 D2C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고 선언했다가 최근 재빠르게 노선을 변경했다. CEO가 직접 "도매 파트너들은 우리의 최고 파트너이며, 앞으로 마케팅 전략은 도매가 최우선, D2C는 다음 순위"라고 발표한 것이다.
호카, 온 등 신생 브랜드들도 나이키를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 아직 매출 규모는 나이키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유통업체를 통해 고객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입소문을 얻고 있는 것이다. 투자은행 TD코웬은 최근 호카와 온 두 브랜드가 지난 4년간 나이키가 2주 동안 쓸 마케팅 비용만으로 나이키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고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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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진 기자 sojinb@mt.co.kr 박의정 디자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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