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삭감 논리 과장" 전 경사노위 위원의 작심 반론
'실업급여 하한선 높아, 재취업 안 한다' 지적
하한선 높지만, 실질 수급액 적을 수 있고
재취업 못하는 문제는 고용 시장 열악한 탓
"실업급여 조정하려면 여러 측면 함께 고려해야"
“노동 취약계층에 불리한 실업급여 개혁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정부 주장이 명백한 사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삭감이 필요할 만큼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가 최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에 제출한 ‘윤석열 정부 실업급여제도 개정방향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더 적은 사람에게, 더 적은 금액을’ 지급하려는 실업급여 개편 방향이 잘못 설정됐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실업급여 삭감을 정당화하기 위해 ‘실업급여가 지나치게 많다’ ‘실업급여 기금이 악화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지적했다. 남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및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 등을 거친 노동ㆍ복지 전문가다.
①실업급여 높다? 계산 잘못됐을 수 있어
남 교수는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실업급여 하한선(최저금액)이 비교적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실업자는 ‘실업 전 평균임금 60%’와 ‘최저임금 80%’ 가운데 높은 금액을 실업급여로 받는다. 정부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소득(179만 원)이 실업급여 수급액(184만 원)보다 적은 ‘임금 역전’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실업자가 ‘재취업은 안 하고 실업급여만 타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고, 이를 막으려면 하한선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그러나 “최저임금 노동자와 실업급여 수급자 간 소득 역전이 마치 일반적 현상처럼 말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임금을 계산하며 사회보험료 등 세율을 10.3%로 계산했지만, 실제로는 연말정산에서 각종 소득ㆍ세액공제로 세금을 돌려받기 때문에 실질 세율은 0%에 가깝다. 또 정부는 실업급여 수급자의 경우 사회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고 계산했지만, 실업자 역시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더 받고’ 실업급여 수급자는 ‘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②재정 부담? 활황 땐 증가하고 불황 땐 감소
정부가 문제 삼는 ‘실업급여 재정 악화’도 일단은 사실이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2018년 131만5,000명에서 2021년 177만5,000명으로 늘어나면서 실업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도 같은 기간 9조7,097억 원에서 5조8,188억 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이런 현상을 ‘실업급여 하한선이 너무 높아 재취업률이 떨어지고’ ‘실업급여 반복 수급이 증가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남 교수는 다르게 본다. 근로자와 사업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은 “취업자가 증가하는 경기 활황일 때는 쌓이고, 실업급여 지출이 증가하는 불황일 때는 감소하는” 구조다.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 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고용보험 기금 적자가 일어나는 일은 당연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도덕적 해이로 연결시킬 근거도 불충분하다.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해고ㆍ권고사직ㆍ폐업 등으로 인한 ‘비자발적 퇴직자’에게만 지급하고, ‘자발적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 남 교수는 “실업급여 반복수급은 구직자의 부정이 아니라 장기간 일할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상황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OECD 40개국 가운데 자발적 퇴직자에게 실업급여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는 루마니아ㆍ튀르키예ㆍ헝가리ㆍ한국 등 13개국에 불과하다.
실업급여 조정? 여러 측면 함께 검토해야
우리나라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노사 각각 0.9%에 불과하다. △노사 각각 1.3%(독일) △노사 각각 3%(오스트리아) △사용자만 4.05%(프랑스) △사용자만 7.65%(네덜란드)를 부담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요율이 낮다. 정부ㆍ여당이 문제 삼는 게 ‘재정’이라면 실업급여를 깎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고용보험 수입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 선진국에서는 실업자 구제를 위해 노동자보다 사업자가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도 제도 개편에 참고할 사항이다.
남 교수는 “반복 수급을 무조건 편법으로 간주해 일괄적으로 규정을 바꾸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노동시장에서 분투하는 취약 노동자에게 징벌을 가하는 일”이라며 “정말 실업급여 부정수급이 문제라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개별 수급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부정 수급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실업급여 하한선 조정 역시 “하한선을 낮춰 제도의 관대성을 희생하고자 한다면 실업급여 적용 범위, 수급 기간, 상한선 등 다른 측면을 함께 검토해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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