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칼부림도, 교사 습격도… ‘치료 거부한 정신질환자’
지난 3일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묻지 마 칼부림’ 사건 피의자 최모(22)씨와 지난 5일 대전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피의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정신 질환 병력이 있지만 치료를 받다가 거부했다. 비슷한 범죄를 막으려면 국가가 나서 중증 정신 질환자의 치료를 지원하고 환자가 거부하는 경우에도 입원 치료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최씨는 대인기피증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2015~2020년 병원을 다니며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등 치료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씨는 2020년 조현성 인격 장애(분열성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뒤 약 복용이나 진료 등을 거부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전에서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피의자도 2021년부터 작년까지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주거지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후 병원 측에서 입원 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는 입원하거나 치료받지 않았다고 한다.
정신 질환자가 저지르는 강력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근처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도 과거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까지 받았지만 퇴원 후 약을 복용하지 않고 치료를 중단한 지 2개월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정신 질환자의 경우, 범죄율 자체는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범죄를 저지르면 피해가 심각한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강력 범죄에서 정신 질환자가 범인인 비율이 2012년 1.99%에서 2021년 2.42%로 증가했다.
6일 복지부에 따르면 조현병 등 국내 중증 정신 질환 환자는 50만명 정도다. 이 중 7만7000여 명은 정신의료기관과 요양시설에 입원해 있고, 지역 사회에는 42만 여명이 생활한다. 이 중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등록된 환자는 9만2000명 정도다. 환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병실은 줄고 있다. 정신 질환의 진료 수가가 낮아 종합병원들이 정신과 폐쇄 병동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다. 정신병원 전체 병상도 2017년 6만7000여 개에서 올해 5만3000여 개로 줄었다. 그 결과 경찰이 정신응급환자를 입원시키려면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작년 1~6월 평균 3시간여가 걸렸다.
복지부는 지난 4일 관계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신 질환자의 입원과 치료를 지원하는 제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법무부는 중증 정신 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사법 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7년 정신건강보건법이 개정된 이후 환자 본인이 입원을 거부할 경우 강제 입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정신 질환자에 대해 경찰이 ‘응급 입원’을, 시·군·구 지자체장은 ‘행정 입원’을 시킬 수 있지만 소송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9년 4월 안인득은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2명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그도 정신병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다. 범행 1개월 전 형이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지만 보호 의무자(직계 혈족)가 아니라서 입원 신청이 거부됐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신 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라도 꾸준히 치료만 받으면 극단적 상황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6일 성명을 내고 “핵가족 또는 1인 가구 중심 사회에서 더는 중증 정신 질환의 무거운 부담을 개인과 가족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보호 의무자에게 책임을 과다 전가하는 현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7년에 바뀐 강제 입원 요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보호의무자인 직계혈족과 배우자가 신청하면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 과거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결정으로 강제 입원이 가능했지만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서로 다른 의료기관에 속한 전문의 2명 이상의 소견이 일치해야 하는 등 요건이 강화됐다. 강제 입원이 이뤄지더라도 한 달 안에 입원 적합성 검사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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