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
그 강아지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나의 착각으로 밝혀졌다. 아내는 잘 보라고, 심지어 종(種)조차 다른데 어떻게 헷갈릴 수가 있느냐며 퉁바리를 먹였다. 그럼에도 인정 못하는 나는 저만치 멀어지는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꼬리조차… 하는데, 산책 나온 개들이 다 그렇지, 소리만 돌아왔다.
사람 얼굴 못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개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시무룩하다가 개니까 더한 것 아니겠나 싶다. 실은 난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꽤 사귄 사람도 얼마간 관계하지 않으면 얼른 알아보지 못하곤 했다. 내 경우엔 시각적 정보가 머릿속의 특정 데이터와 접속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보다 원활하지 못한 모양이다. 눈이 마주치면 꾸벅 인사부터 하고 보자 마음먹은 후로는 아주 결정적인 불편함은 면해왔는데… 그러니까 이건 나의 오랜 비밀과 관련한 얘기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강아지가 내 눈구석 깊숙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암만 예뻐도 우쭈쭈 소리 내며 손바닥을 내밀 성격이 못 되는 난 걸음을 옮길 줄 몰랐다. 안 그러던 양반이, 하는 아내에게 나는 저 강아지만의 특별한 미모에 대해 한동안 늘어놓았다. 분명, 그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하곤 달랐던 것이다.
아이의 문화센터 발레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그 강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을 좀 봐봐, 호소하는 아내의 답답함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장마가 지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도 그 강아지가 떠내려 가버린 걸까. 그 사이, 수업을 끝낸 아이가 요정 같은 발레복차림으로 나왔다. 콧노래를 부르던 아이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은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을 때였다.
우리 집 아이는 발레선생님이 손등에 붙여주는 작은 하트 모양 스티커를 대단히 소중한 것으로 여겼는데, 그게 사라진 것이었다. 고 손톱보다 작은 걸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아이 엄마가 있었다면 어찌 달래고 넘어갔을 텐데, 그 친구에게 나의 말은 좀체 먹혀들지 않았다. 등줄기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지하주차장까지의 동선을 훑고, 플래시를 켜 카시트를 살펴도 스티커는 보이질 않았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천불을 삼키며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채웠다.
근처 1000원샵에는 헬 수 없이 다양한 스티커가 우리 부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고민 않고 얼마나 신경질적으로 집었던지 근 만 원어치가 되었다. 땀이 식을 새 없이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는데,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놈의 스티커보다 훨씬 더 크고, 심지어 홀로그램까지 들어있는 걸 사줬더니 왜 그런 얼굴이냔 말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매주 하나씩 붙여도 네가 이 아빠 나이가 될 만큼 샀질 않았느냐, 뭘 어떻게 해야… 차 안은 자괴감에 잡아먹힌 나와 시무룩한 아이가 만들어낸 침묵으로 팽팽했다.
이윽고 타이어와 지하주차장 바닥이 만들어낸 비명 같은 마찰음 사이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스티커 사줘서 고마워 아빠. 하지만 이건 아빠가 돈을 주고 산 거야.” 그럼 훔치란 말이냐. “발레선생님이 준 게 아니야.”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아이의 차분함에 나는 벙어리가 됐다.
한밤 중,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 보는데 잡념이 어른거린다. 외계에서 온 거인이 있다면, 그에게 우린 어떤 모습일까? 눈 둘, 코 하나, 입 하나… 내가 그 강아지를 알아보지 못하듯 다 똑같이 생겼다 여기지 않을까. 그 거인 같은 것이 또 있다. 돈은 세상 거의 모든 것을 대체 가능하도록 만들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 앞에 붙은 ‘거의’를 보지 못할 때,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것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 인식의 성긴 그물코로는 결고 알아볼 수 없었던 대체 불가능한 것에 대하여 생각에 잠긴다.
아이야, 사람 얼굴 못 알아보기로 유명한 내게 너만 특별히 예쁘게 보이는 까닭을 이제 알겠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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