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는교?
오래전부터 영정사진 봉사를 하고 있는 부산보건대학 박희진 교수가 올해 봄부터 6·25 참전용사들의 사진도 병행해서 찍고 있다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진이었다. 때론 공원 벤치에 앉아 계셨고, 동네 세탁소에, 조그마한 음식점에, 동네가게에서 마주쳤던 태극기가 붙은 모자를 쓰시고 가슴에 훈장을 달고 세월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지 표정에서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어르신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전시회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비로 조그마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했다. 박 교수의 말을 빌리면 현재 부산시에 등록된 6·25 참전용사는 2700여 명이고, 그중 연락되는 분은 1000명, 활동하는 분은 400~500명 정도라고 하면서 이분들의 연세가 90에 가까우니 돌아가시기 전에 전시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분들은 공룡 같은 존재라고 했다. 지구상에 공룡이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존재했다는 이야기만 남은 공룡처럼, 이분들 또한 존재했다는 사실만 남아 회자되는 그런 존재가 될 것이라 했다.
생사를 넘나들던 그들의 과거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 하나 없는 오늘의 그들 현실처럼 사진은 아무런 장식 없는 패널에 붙어 있었다. 이것이 사진 속 인물들이 처한 현실이다. 지금 세대는 전쟁을 잊었고, 전쟁을 겪은 세대는 이미 죽었거나 사진 속 그들처럼 세상의 무관심을 향해 눈길만 보낸다.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는교!” 세상을 향한 응시에 녹아 있는 이 질문은 숱한 풍상을 겪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살아온 그들의 자조의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6·25 참전용사의 87%는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통계가 있다. 2002년부터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했지만 지금 현역 이병의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6·25 참전용사 중 65세 이상에게 참전명예수당으로 월 39만 원이 지급되고, 80세 이상 중 생계가 곤란한 분에게 월 10만 원의 생계지원금이 지급되는 실정이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피눈물로 몇 년을 보냈던 그 청춘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얘기한다. 국가보훈청에서 국가보훈부로 격상된 보훈부는 그에 걸맞게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과 보고 있는 세상이 누구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것인지 깨닫고, 늦고 모자란 감사와 보상을 하루빨리 그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국가에서 준 태극기가 박힌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면 어떤 젊은이들은 경멸하는 말투로 ‘태극기 부대’라며 비웃는다고 한다. 아마 광화문 태극기 부대라고 생각하는가 보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그들에게 태극기는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였고, 죽어 쓰러져간 동료 병사들을 따뜻하게 감싸준 자랑이었고,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탱해 준 단 하나 명분이었고, 살아서 돌아갈 희망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며 그런 태극기를 들고 악다구니로 고함을 치는 광화문 태극기 부대라며 비웃음을 받는 이런 오늘은 누구의 잘못일까.
그들은 반공이라는 거창한 구호의 외침은 모르고 전쟁터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동료를 보았고, 같은 말을 쓰고 저희와 같은 입장으로 전장으로 끌려나온 상대를 향해 살기 위해 총을 쏘았고, 옆의 동료가 죽은 지옥을 경험하고 살아온 지금 그들의 가슴속엔 새겨진 것은 반공이 아니라 반전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 전시회를 준비했고, 이들이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된 전시를 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도 당신들을 잊지 않고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지위를 올렸다고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를 위해서 희생을 당했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보상을 하는 보훈은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이 나라의 근간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국가보훈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보훈이나 명예수당이라는 것이 우리의 명예를 높여주고 자랑스럽게 해야 맞는 것인데 오히려 국가가 저희에게 해주는 대우는 참전한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이 귓전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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