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나도 나와 사회생활을 한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처음 직장에 입사할 즈음의 나는, 사회에 첫발을 떼는 젊은이의 포부와 열망으로 가득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자존심과 허세로 뭉친 풋내기였다. 진심과 진력을 다하고 싶었던 당시 나의 사회생활 좌우명은 이랬다. “나는 내가 정말로 웃고 싶을 때만 웃는다”.
나는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운 눈치 없는 신입이었다. 십여 년 시간이 흘러 여전히 직장을 다니는 나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직접적이고 빠르게 드러내는 소통법이 늘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를 절제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 빈말을 하기도 하며, “어머, 부장님. 진짜 웃겨요” 짝짝 박수도 친다. 하지만 이 글은, 사회생활이란 본심을 숨긴 채 열심을 다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수법이다, 라는 결론을 내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생활은 인간 사이 가능한 관계와 활동의 총체다. 회사뿐 아니라 이웃과 가족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 연애도 둘이서 하는 사회생활이다. 심지어 자신과도 사회생활을 한다, 시라는 도구를 통해서. 신입 사원을 지나 경력이 쌓이면서 처음 상정한 좌우명대로 생활하기 쉽지 않다고 느낄 즈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 골방에 처박혀 사회적 가면을 벗은 채 나를 마주하는 순간엔 좌우명을 지킬 수 있었다. 시 앞에선 정말로 솔직해질 수 있다. 오직 웃고 싶을 때만 웃고, 울고 싶을 땐 가득 울어도 된다. 오히려 진정이 아니라면 시는 곁을 내주지 않는다. 사회생활의 왕도는 진심과 진력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젊은 날의 야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로 인해, 나는 아직 닿지 못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진짜 사회생활을 나와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진솔해지자. 그다음 천천히 나의 바깥으로 퍼뜨려 나가자. 연인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세상의 그 모든 아름다운 익명에게. 내가 마음으로 힘껏 그들을 위하여 너무나 지당하고 자연스러워 펑펑 우는 것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활짝 웃을 수 있을 때까지.
채길우 시인·제약 회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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