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통령 만날 때마다 ‘푸른 리본’ 다는 日 총리… 그 끈질긴 의지 배워야
기시다 “김정은과 만나겠다”… 북·일 관계자는 올해 2차례 비밀 회동
2002년 고이즈미 방북 이후 끊임없이 납치 문제 해결 위해 핫라인 가동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516명… 국제사회와 협력해 이제라도 구출해야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여름 삼복더위에 일본 도쿄 경시청을 방문하였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실상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등 납치 문제 담당 기관과 민간 단체에서 전략연의 탈북자 연구원을 계속 도쿄에 초청하였기 때문에 관리 책임을 맡은 원장으로서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일본 측은 탈북자 연구원들에게 일본인 납치 관련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 최고 2000만엔(약 2억400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방일(訪日)을 집요하게 요청하였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알고 있는 납치의 내막을 평양 출신 탈북자라도 알 수는 없었다.
도쿄 경시청에서 납치 문제 현황 외에 1년에 행방불명자로 전국 경찰서에 신고되는 일본 국민은 8000여 명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이 중 연말까지도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는 행불자는 2000여 명이라고 한다. 인구 1억2000만여 명인 일본에서 행불자가 예상보다 많다는 점을 주목했다. 일본의 행불자 현황을 경시청에서 파악한 것은 납치자와 행불자의 연계성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수개월 물밑 접촉 끝에 평양을 전격 방문하였다.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 장관이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했고 이후 총리가 된 후 납치 문제에 매달렸다.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은 북·일 평양 선언에 서명하였다. 고이즈미는 식민지 시절 한반도 주민들에게 입힌 ‘엄청난 피해와 고통’에 대해 ‘깊은 유감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했다. 김정일은 일본인 13명을 납치하고 일본 영해에 간첩선을 침범시킨 데 대해 사과했다. 1977년부터 5년간 일본의 외딴 해변에서 여학생, 요리사 및 데이트 중이던 커플 3쌍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납치는 일본인으로 위장하거나 일본어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자신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면서 ‘국가 특수 기관의 일부 분자가 광신적 믿음과 공명심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1968년 청와대 습 격사건에 대해 김정일과 비슷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청와대 습격은 우리 공화국 내부의 김창봉, 허봉학 같은 극렬 분자들이 임의로 일으킨 사건이오. 이 사건을 보고받은 뒤 관련자들을 모두 철직(해임)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전형적 꼬리 자르기식 변환 전술이었다.
김정일이 밝힌 일본인 납치 전모는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니가타현에서 13세에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가 북한 남성과 결혼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북한 주장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분개했다. 수많은 행불자에 궁금해하던 가족들은 혹시 우리 아들, 딸과 친척이 북한에 납치된 것은 아닌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국민들은 피랍자 가족들의 비극적 삶에 분노했고 일본 정치는 하루아침에 납치자 문제에 빨려 들었다. 고이즈미의 방북 이후 일본 방송은 온종일 북한 프로그램과 뉴스가 차고 넘쳤다.
내치(內治)를 외교와 절묘하게 연계하는 일본 정치가 수많은 행불자에 황당해하던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2004년 고이즈미 총리는 2차 방북을 하였으나 당초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던 북·일 수교는 좌초되었다. 아베 총리는 2014년 납치 문제 재조사와 대북 제재 독자 해제를 연계한 이른바 ‘스톡홀름 합의’를 북한과 맺었으나 양측의 불신으로 중단됐다.
납치 문제의 쟁점은 양측의 숫자 맞추기다. 일본이 확인한 공식 납치 피해자 수는 12건에 17명이지만 일본 민간 단체들은 ‘700명 이상의 실종 사건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해왔다. 반면 북한은 13명을 납치한 사실은 인정하고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나, 8명은 사망했다고 밝히고, 4명에 관해서는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올해 들어 다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다”고 하자 북한 박상길 외무성 부상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틀 뒤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 외무성 발표 다음 날 북일 정상회담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일본을 상대로 대화를 언급한 것은 지난 2016년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 중지 선언 이후 처음이다. 일본 언론들은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협상 재개 신호로 해석하였다. 6월 이후 일본의 국가안전보장국과 북한의 외무성 관계자가 중국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2차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일본 언론이 확인하였다. 실무 회동에서 주요 사안들에 대한 견해차는 여전했지만 향후 빅딜에 의한 고위급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전통적으로 양 기관은 핫라인을 유지하며 과거에도 제3국에서 회동했다.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정보관은 2018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등지에서 북한의 통전부 김성혜 실장과 몰래 회동했다. 북일 간에는 다양한 핫라인이 가동되며 조총련 등이 중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북한이 일본과 핫라인을 가동하는 것은 한·미·일 3각 협력 고리를 약화시키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것이다. 유엔 제재에 갇힌 평양에 일본은 새로운 돌파구다. 자민당은 가장 뜨거운 국내 정치 이슈인 납치자 문제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납치 문제 관련 일본 정부와 국회의 정책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은 자국민을 송환시키려는 끈질긴 의지와 노력이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된 국민에 대한 역대 우리 정부의 송환 노력은 일본과 비교해서 크게 미흡하였다. 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때마다 아베, 기시다 등 일본 총리들은 양복 재킷에 ‘푸른 리본(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 상징)’을 달고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지원 요청을 빠뜨리지 않으며 미국 대통령을 납치자 가족들과 만나게 한다. 미국 상원에서 결의안을 이끌어 내고 유엔 안보리에서 납치 문제를 의제화하고 있다. 이제라도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고 알려진 우리 국민을 구출해야 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6·25 이후 납북자 중 억류된 사람은 516명에 달한다. 자국민 보호가 강력한 외교 목표가 되지 않는 국가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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