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칼럼] ‘빚 권하는 사회 구조’ 청산하자
가계 소득은 제자린데 지출 ↑
고용·임금 보장 소득 향상 도모
빚 관리 골든타임 꼭 잡아야
가계부채가 다시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완화한 데다 주택가격이 상승 조짐을 보이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빚 증가속도도 세계 제일이다. 부채 누적은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른다. 경제활력 저하는 약과이고 심하면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가계부채는 망국병이 될지도 모른다.
파국적 상황 없이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다. 가계부채를 효과적으로 감축하기 위해서는 ‘빚 권하는 사회’ 구조를 탈피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제 그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가계부채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가계부채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해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가계부채 증가는 서민의 생활환경이 열악해진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당국에서는 금융안정 차원에서 가계부채를 다루어 왔는데, 이제는 가계가 왜 빚에 의존하는지를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가계가 빚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계소득이 향상되어야 한다. 즉 고용이 늘고 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그 혜택을 받은 기업은 고용을 확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반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데 거시경제정책을 동원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은 주택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뿐이다.
주택가격 안정도 필수이다. 관련 세제를 바꾸어가면서 가격을 억누르기보다는 주택 공급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아울러 굳이 주택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그리고 금융기관의 책임을 강화하여야 한다. 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은 신용위험이 낮다고 평가하는 현재의 관행이 문제이다. 가계대출의 보증 한도를 축소하고 시장금리 대신 적정 금리로 신용을 평가토록 하며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산정에서 주택담보대출의 위험도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도 각성하여야 한다. 대출 확대와 같은 선심성 공약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재정 금융 확대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거나 부채를 탕감해 주는 일도 극력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출은 특혜라는 그릇된 선입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차입을 통해 획득하는 현금성 자산으로 인해 누리는 ‘자유’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빚을 갚아야 하는 부담은 엄청난 질곡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부채의 진면목을 직시하여야 한다.
독일인들은 부채에 대해 냉엄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어에서 빚(Schulden)은 죄나 실수(Schuld)의 복수 형태로서 부채는 죄라고 여겨진다고 한다. 이런 문화적 배경으로 실제 독일 정부나 국민들은 빚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빚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출중한 경제성과를 내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대구가톨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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