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쎄를 밀어내는 유명세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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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사용이 줄면서 한자어 오용이 늘고 있다.
예컨대 '유명세'도 이제 원뜻 有名稅보다는 와전된 有名勢로 더 많이 이해된다.
1970년대 신문도 한자 有名稅는 원뜻대로 잘 썼으나, 한글 '유명세'만 나오면 자주 와전된 뜻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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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사용이 줄면서 한자어 오용이 늘고 있다. 예컨대 '유명세'도 이제 원뜻 有名稅보다는 와전된 有名勢로 더 많이 이해된다. 有名稅는 '유명해서 붙는 세금' 즉 '이름이 널려 알려져 생기는 불편이나 곤욕'을 일컬으므로 '유명세를 치르다/유명세가 따르다/유명세에 시달리다'가 원래 맞는데 有名勢(유명해서 생기는 기세나 권세)로 흔히들 오해해 '유명세를 타다/얻다/떨치다'로 더 많이 쓴다.
1970년대 신문도 한자 有名稅는 원뜻대로 잘 썼으나, 한글 '유명세'만 나오면 자주 와전된 뜻으로 썼다. 말의 오용을 늘 인정할 수야 없지만 왜들 틀리는지 이제 받아들일 만한지 살펴볼 여지는 있다.
이런 오용은 발음과도 관계있다. 세(勢)가 붙는 합성어 '안정세/성장세/폭등세'는 발음이 [세]인데 '유명세를 타다/얻다'도 대개 [유명세]다. 원래 유명세(有名稅)의 발음은 [유명쎄]다. 양도세, 법인세, 재산세, 통행세 등이 모두 [쎄]인 것과 똑같다. 티브이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조차 '유명세를 치르다'도 [유명세]로 자주 잘못 발음한다.
주세(酒稅), 관세(關稅)는 단일어라서 발음이 [세]다. 발음이 다른 면세(面稅: 면에서 매기는 세금)[면쎄] 및 면세(免稅)[면세]도 합성어 및 단일어 차이 때문이다. 관세는 흔히 [관쎄]로 잘못 발음된다. 통관세[통관쎄]의 영향이거나 관(關)의 단일어 취급 때문일 수도 있는데 현대 한국어에서 관(關)은 한자어 어근(형태소)일 뿐 단일어는 아니다.
절세(節稅)[절쎄]는 역사음운론과 더 관계있다. 절대/질서/절정 등 받침 ㄹ 다음의 잇소리(ㄷ/ㅅ/ㅈ)는 된소리가 된다. 한국어에서 ㄹ 유음화 전의 중국어(중고한어) 종성 [t̚] 발음이 반영된 것이다. 發(발)이 광둥어 fat[팟], 베이징어 fā[파]이듯 광둥어는 종성 발음이 남아 있다.
유명세(有名稅)는 1960년대부터 쓰인 일본어에서 유래한 듯싶다. 중국어 成名的代價(이름을 날린 대가)는 영어 price of fame과 비슷하다. 영어처럼 '명성/유명의 값/대가'로 쓰는 언어가 많으나, 네덜란드어 tol van de roem(명성 통행세)은 유명세에 가깝다. 프랑스어 rançon de la gloire(명성의 몸값)도 명성에 잡힌 볼모가 연상돼 조금 특이하다.
勢가 붙는 합성어는 '안정하는/성장하는/폭등하는 기세/형세'를 뜻하듯 대개 동사(용언) 어근과의 결합이다. 합성어의 稅는 무엇에 관한 세금이므로 명사(체언)에 주로 결합한다. 유명(有名)은 대개 형용사(용언) '유명하다'로 쓴다. 즉 '유명세'의 세금이 비유라서 딴 '-세'와도 다르지만 '유명'도 형용사 어근으로 느껴지면서 有名勢로 풀이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갔을 것이다.
'유명하다'와 달리 '명성하다'는 없으므로 애초에 명성세(名聲稅)였다면 [명성쎄] 발음도 자연스러우니 名聲勢로 오해될 일도 없었을 법하다. '유명세'는 이렇듯 형태음운론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며 의미도 바뀐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낱말 안에도 이질적 요소는 얼마든지 들어간다.
유명인을 세금 걷는 주체로 치면 有名稅도 국세(國稅: 나라에서 걷는 세금)처럼 유명인에게 좋다고 풀이해도 되겠다. 그러면 맥락에 따라 '유명세 탓/덕' 다 되는 셈이다. 1970년대부터 거의 50년 가까이 쓰인 유명세(有名勢) 용법도 이제는 인정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 흐름을 거스르는 게 늘 최선은 아니다. 나쁜 흐름이라면 막아야겠지만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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