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부 방심위 JTBC·KBS·MBC·CBS 중징계 재판 결과는 달랐다

금준경 기자 2023. 8. 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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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심의'논란 제재 10건 재판서 다른 판단
재판부 방송 유형 따라 차등 적용, 공적 사안 여부와 내용 타당성 등 고려
정부여당 입김 강한 방통심의위 구조 개선 필요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에서 '정치심의'라는 비판을 받은 제재가 재판 결과 연달아 취소됐다. 정치 종속적인 방통심의위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으로 새 정부 방통심의위 출범 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정치심의 논란 제재 10건, 법원은 다른 판단

대법원 3부는 지난달 13일 JTBC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방송심의 제재조치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방통심의위는 2014년 4월18일 JTBC 손석희 앵커가 진행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인터뷰가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해 시청자를 혼동케 했다며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는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제재가 취소됐다. 방통심의위의 제재 처분은 행정기구인 방통위가 맡기에 방통위 대상으로 소송이 진행됐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내역. '다이빙벨' 재판을 제외한 내역이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방통심의위가 중징계를 의결했으나 재판부가 제재를 취소한 판결은 이뿐만이 아니다. 방통심의위 심의에 대한 행정 소송 및 연관된 재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방송사 중징계(법정제재) 및 통신심의 시정요구 가운데 10건이 취소 판결이 나오거나 방통심의위와는 다른 판단을 내린 판결이 나왔다.

2019년 대법원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 RTV에 내린 '관계자 징계 및 경고' 법정제재 처분이 위법하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이 외에도 △ 천안함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2010년) △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2013년) △ 정부 축산정책을 비판한 CBS '김미화의 여러분'(2012년) △박창신 신부 인터뷰 논란이 불거진 CBS '김현정의 뉴스쇼'(2013년) △ 박근혜 대통령과 인공기를 나란해 배치한 MBC '뉴스데스크'(2013년)에 법원이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취소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 2015년 다이빙벨 보도 재판 1심 판결 당시 JTBC '뉴스룸' 갈무리

통신심의의 경우 △쓰레기 시멘트 문제 제기한 인터넷 게시글 삭제 결정(2009년) △ 북한의 IT분야를 다루는 영국인이 운영하는 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 차단 결정(2016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방통심의위 제재와 같은 사안을 다룬 재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온 경우도 있다. 방통심의위는 MBC 'PD수첩' 광우병편에 최고 수위 제재인 '시청자 사과'를 결정했으나 명예훼손 재판에서 PD수첩 제작진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계적 균형' 아니면 제재? 재판부 “재량권 남용”

방송 심의 관련 재판부의 판단을 보면 공통적으로 매체와 방송의 성격에 따라 심의에 차이를 둘 필요가 있고 공적 관심사에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 제재가 부당하며, 문제 소지에 비해 제재 수위가 강하다는 점을 짚었다.

대법원은 JTBC '다이빙벨 인터뷰'에 관해 “해난구조 전문가가 제시한 대안적 구조 방안에 대한 것으로, 심의규정에 따라 엄격한 객관성 유지 의무가 부여되는 재난방송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세월호 수색 및 구조 작업 등 공적 사안에 관한 것이고 다이빙벨이 수색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또한 “문제라 하더라도 관계자 징계를 명한 제재조치 명령은 그 위반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하여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9년 RTV '백년전쟁' 재판부 역시 “다큐멘터리는 선거방송이나 보도방송처럼 각각 동등한 기계적 균형을 지킬 필요가 없다“며 “표현이 다소 거칠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외국 정부 공식문서와 신문기사 등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고 있다. 중요한 부분들이 대부분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해당 다큐는 공적 관심 사안을 다루고 있다. 공공 이익을 위한 방송”이라고 했다.

박창신 신부의 일방적 주장을 내보내 제재를 받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1심 때부터 제재 취소 판결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생방송 인터뷰로 진행된 해당 방송은 해설과 논평 프로그램에 가까워 공정성ㆍ균형성ㆍ객관성은 뉴스 프로그램보다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박 신부 발언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개진으로 보이며 해당 인터뷰에 반론도 함께 다룬 점 등을 고려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정부의 축산 정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했다가 제재를 받은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1심 재판부는 “시사프로그램은 뉴스와 다르고 해설·논평으로 볼 수 있다”며 “그 내용이 공정성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KBS '추적60분' 심의에 관한 재판은 2건 모두 제재 취소 판결이 확정됐다. 천안함 사건을 다룬 '추적60'분에 관해 재판부는 “사건이나 쟁점의 이면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뉴스보도, 토론방송처럼 양적 균형을 요구할 수 없다”며 “정부가 주도한 조사결과에 대한 검증을 다룬 방송은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이 더욱 고려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공정성과 객관성 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추적60분'의 경우도 재판부가 “국가정보원이 철저한 증거주의에 입각한 수사관행을 확립하기를 촉구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며 “원고가 진실규명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 수집을 게을리 했다거나 이 사건 방송으로 인해 시청자가 편향된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고 쉽사리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린 사례도 일부 있다. 특히 내용의 일방성이 강한 경우 이 같은 판단이 내려졌다. 유우성 간첩사건을 다룬 JTBC 보도에 대해 재판부는 “반대편 당사자를 배제한 채 오로지 유씨와 그 변호인의 입장만을 방송해 일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며 “양적, 질적 공정성과 균형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의 경우 1심에선 “부정적 사례와 평가만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이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해 사실을 왜곡하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위의 손을 들었다. 대법 판결의 경우 전원합의체에서 7대6으로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정치심의 논란' 근본적 문제는 방통심의위 구조

그러나 재판 결과 제재가 취소돼도 책임지는 이들은 없다. 재판은 대부분 심의를 맡은 방통심의위원의 임기가 끝난 뒤 확정됐다. '다이빙벨' 재판은 7년 5개월이 걸렸다.

재판 결과를 외면하기도 했다. 장낙인 전 방통심의위원은 지난해 2기 방통심의위 회의 내용을 기록한 '막장 방송? 막장 심의?' 책을 통해 “('김미화의 여러분') 1심 판결 직후에 열린 전체회의 때 필자가 이 판결 결과에 대해 거론한 바 있는데 이때 복수의 여권 추천위원들로부터 나온 발언이 '재판은 재판, 심의는 심의'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정치심의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방통심의위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사실상의 행정기구가 심의하는 사례는 선진국에선 찾기 힘들다. 방통심의위는 표면적으로는 '민간독립기구'이지만 정부여당에서 위원을 6명, 야당에서 3명 추천해 사실상 정부여당측 의도대로 심의를 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검열을 막기 위해 민간독립기구로 만든 취지에 반한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2015년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정치심의 논란이 극심했던 2기 방통심의위 전체회의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만장일치'(합의) 결정이 전체 47.6%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의규정 가운데 '공정성' 심의의 경우 만장일치 비율이 더 낮았다. 2014년 유승관 동명대 교수가 쓴 '방송 공정성 심의규제 분석과 대안' 논문에 따르면 방통심의위의 정부여당추천 위원의 심의 의견이 결과와 일치하는 비율은 85%로 야당추천 위원(26%)과 비교하면 격차가 컸다. 정도는 덜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 방통심의위에선 TV조선 등 보수매체의 정부 비판 방송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등 정치심의를 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여러차례 국회에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폐기됐다. 민주당은 야당 때인 20대 총선 당시 “정치적 심의 배제를 위해 방통심의위 구성 개편 및 심의규정 대폭 수정”을 언론자유 공약으로 제시했다. 역시 민주당이 야당 때인 19대 국회 때는 민주당 최민희, 신경민 의원이 야당 추천 위원을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민주당 집권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관련 논의가 없었다.

반면 21대 국회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정용기 의원이 방통심의위 야당 추천 위원을 2배 늘려 여야 균형을 맞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역시 국민의힘 집권 이후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만 전 방통심의위원장은 2012년 “헌법재판소 구성 모델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여야 교섭단체 뿐 아니라 학계, 언론 현업단체,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구성하는데 이 같은 구조를 방통심의위 모델에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언론노조는 언론계, 시민사회, 학계, 법조계 등의 인사들로 구성된 방송(13인) 광고(10인) '방송언어(11인), 통신권익보호(11인) 등 현행 특별위원회(자문기구)를 소위원회로 전환해 심의를 분산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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