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교과서에서 지워진 ‘일본군 위안부’… 고노 담화는 마지막 보루"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 명예교수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담화’가 발표된 지 지난 4일로 30년이 됐다. 고노 담화는 “역사교육과 연구를 통해 계속 기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 이후 일본 역대 내각은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초·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선 관련 기술을 축소하거나 수정했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역사교과서 개악에 맞서 온 일본 시민운동가와 학자들은 고노 담화가 말뿐인 계승일지라도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고노 담화가 있기에 아직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넷21’의 스즈키 도시오 사무국장을 지난 4일 일본 도쿄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역사학자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 명예교수도 서면으로 질문에 답신을 보내 왔다.
역사수정주의자, 두 방향 역사교과서 전쟁
고노 담화가 나온 이후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술이 늘어났다. 스즈키 사무국장은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역사수정주의 정치인들이 두 가지 방향에서 역사교과서 전쟁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중심으로 우익 사관 교과서를 만들어 확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성 역사교과서에서 식민지배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저지른 가해에 대한 서술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도는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넷21’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새역모 교과서 채택하지 않기 운동을 벌인 일본 시민들의 힘으로 어느 정도 막아냈다. 출판사 '지유샤'와 '이쿠호샤'가 발간하는 역사교과서는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전국 학교에서 채택된 비율이 5, 6%까지 상승했으나, 아베 전 총리 퇴임 후인 2021년도 이후엔 1% 미만으로 급감했다. 스즈키 사무국장은 “지유샤는 점유율이 낮아도 우익 세력의 기부를 받아 교과서를 계속 내겠지만, 이쿠호샤는 아베의 지원에 의존해 왔으므로 내년에 교과서를 계속 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기술 줄었지만 고노 담화가 마지막 보루
두 번째 시도는 역사수정주의 세력이 사실상 관철시켰다. 점유율이 높았던 '일본서적'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기술을 많이 실었다는 이유로 우익의 집중 공격을 받은 후 2009년 도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출판사들은 몸을 사렸고 중학교 교과서에선 위안부 기술이 사라졌다. 2021년엔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란 표현을 쓰라고 결정했다.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희석하려는 의도였다. 이 결정이 2022년 문부과학성 검정에 반영되면서 거의 모든 교과서가 표현을 수정해야 했다. 다만 일부 출판사는 고노 담화를 언급함으로써 아직도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싣고 있다.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우익들에겐 고노 담화가 눈엣가시다. 그러나 고노 담화를 파기하려는 시도는 국제적 압력, 특히 미국의 압력에 의해 번번이 좌절됐다. 다카시마 명예교수는 “아베 전 총리는 식민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2015년 8월 15일 발표한 종전 70년 담화로 덮어 쓰려 했으나, 문안 검토 과정에서 미국의 물밑 압력에 부딪혀 식민지 책임을 부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는 70년 담화에 대한 국회 질의에서 "고노 담화는 재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베 회고록에 따르면 이는 본의가 아니었다. 다카시마 명예교수는 “역사수정주의자의 의도가 국제적으로는 도저히 통용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위안부 기술은 현 상태 유지될 듯... 젊은 세대에 기대"
앞으로 일본 교과서의 역사 기술은 어떻게 될까. 다카시마 명예교수는 “역사수정주의자의 리더 격이었던 아베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고노 담화에 대한 보수파의 공격도 약화됐다”면서 “현재 위안부나 고노 담화 기술을 담은 중학교 교과서는 1개뿐이지만 내년엔 어떻게 될지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즈키 사무국장은 “이미 위안부 기술은 줄어들 만큼 줄었고, 아베는 없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자민당 보수파 눈치를 보기 때문에 현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장기적으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고 편견이 없는 청년 세대들을 통해 문화와 학문 교류가 좀더 활발해지면 먼 장래에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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