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으로 바뀌는 ‘파행 잼버리’
전국 각지 ‘한국 관광’으로 대체…미국 대원들 평택 미군기지로 이동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첫 대규모 국제 청소년 행사’라고 내세웠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 끝에 ‘한국 관광’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허술한 준비, 안일한 안전 인식 등으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 화합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을 새긴다는 잼버리 본래 취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예견됐던 폭염 등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참가자들의 퇴영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 참가자가 많은 일부 국가들도 잇따라 조기 퇴영하고 있다. 한국 참가자들 중에는 처음으로 전북지역 스카우트 대원 80여명이 ‘열악한 환경’ 등을 꼽으며 단체로 짐을 싸 야영지를 떠났다.
정부의 뒤늦은 개입으로 야영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개선됐다. 하지만 야외 행사의 상당 부분이 취소되고 국내 관광 프로그램으로 대체되면서 ‘세계 청소년에게 국격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던 새만금 잼버리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 새만금 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 일원은 짐을 싸 야영지를 떠나는 대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50분쯤 미국 스카우트 대표단이 탄 버스 17대가 야영지를 출발해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로 향했다.
새만금 잼버리 참가국 중 가장 많은 4500여명의 청소년과 지도자를 보냈던 영국 대표단도 전날에 이어 이날도 1000여명이 서울로 떠났다.
미국 대원들은 일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A군(16)은 “비행기를 타고 수천마일을 이동해 이곳에 왔다. 너무 덥고 물이 없어 불편했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면서도 “편안한 곳에서 벗어나려고 야영하러 왔는데 떠나기로 결정이 나서 아쉽지만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스카우트 일부 지역대도 단체로 조기 퇴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 제900지역대 85명은 이날 오전부터 철거 준비를 한 뒤 오후에 야영지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새만금 잼버리 개막 이후 국내 스카우트가 단체로 퇴영을 선언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야영지 상황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준비하라’ 스카우트 가르침 무색…일정 허겁지겁 변경
영내 행사들, 안전 우려 대거 취소…‘교류·우애’ 취지 못 살려
K팝 콘서트는 퇴영식 열리는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서 개최
참가자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냉방 버스 132대가 추가로 투입돼 총 262대가 운영되고 있다. 영내 셔틀버스도 2배로 증차해 24대가 당초 30분 간격에서 10여분 간격으로 운영 중이다. 부안군에서도 영지 곳곳에 그늘막 69동을 추가로 설치했다.
정부는 스카우트연맹 측과 협의해 폭염에 지친 대원들이 즐길 수 있는 물놀이 시설을 8곳에 설치했다. 차가운 생수도 참가자 1인당 하루 5병 이상 지급하고 있고, 냉동 탑차 16대를 운영 중이다. 위생 문제 등이 불거진 화장실과 샤워실 환경 정비를 위해 청소인력도 1400여명이 투입됐다.
현재 새만금 일대 야영지에는 전 세계 152개국에서 온 3만7000여명 스카우트 대원이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영지에 남은 참가자들을 위해 진행됐어야 할 프로그램 등이 중단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당초 ‘문화교류의날’로 지정된 이날은 특별행사가 대거 개최될 예정이었다.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큰 기대를 갖게 했던 K팝 콘서트가 이날 오후 8시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기됐다. 정부는 잼버리 퇴영식이 열리는 오는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K팝 콘서트를 개최하기로 했다.
‘새만금 갓탤런트’도 이날 오전 10시30분에서 7일 오후 8시로 연기됐다. 새만금 갓탤런트는 예선을 거친 독일과 벨기에 등 17개국 참가자들이 각 나라의 전통춤과 노래 등을 선보이는 무대다. 이날 예정대로 진행된 행사는 오전 7시30분 대회를 기념해 나무를 심는 ‘잼버리 포레스트’와 낮 12시30분에 진행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전부였다.
새만금 잼버리에는 하루 5만5280여명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영내 프로그램이 143개 준비됐다. 하지만 야외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대회 전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정부와 조직위원회 준비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스카우트의 세계 공통 모토인 ‘준비하라’의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개막 6일째로 반환점을 돈 새만금 잼버리는 대회 종료 때까지 한국 관광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5일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잼버리 참가자들의 ‘국내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요청했다.
이날까지 마련된 관광 프로그램은 90개다. 프로그램 중 영지에서 거리가 멀어 당일 복귀가 어려울 경우 ‘1박2일’이나 ‘2박3일’ 정도 체류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세계스카우트연맹과 협의가 끝나면 빠르면 7일부터 국내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세계 청소년들이 함께 야영 생활을 하며 문화교류와 우애를 나눈다’는 세계 잼버리의 취지를 살리는 것은 힘들게 됐다는 평가다. 잼버리에 참가한 한국 스카우트의 한 대장은 “외국 대원들은 한국 관광 등 영외 프로그램 확대를 좋아하겠지만 세계 잼버리의 정신을 구현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상황이 이러니 정부가 고육책을 내놓은 것이겠지만 아쉽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김창효 선임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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