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계·연구 없고 ‘뒷북 대응’ 급급한 묻지마 범죄
불특정 상대에게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가 연일 발생해 시민들의 걱정이 크다. ‘신림역 흉기난동’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지난 3일 분당 서현역에서 20대 남성이 인도로 차를 몰아 행인들을 친 뒤 백화점에 들어가 흉기를 휘두르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다음날 대전에선 고등학교에 침입한 남성이 교사를 위해한 사건도 있었다. 인터넷엔 하루가 멀다 하고 무차별 살인을 예고한 글이 오르고 있다. 모방 범죄까지 벌어지면 심각한 사회 불안이 생길 수 있어 정부 대책이 시급해졌다.
‘묻지마 범죄’로 뭉뚱그려 부르는 이 범죄들은 아직 명확한 정의도, 관련 통계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건의 전형적인 특성이 없어 그간 학계에서는 진지한 연구·분석 대상이 되지 못했고, 경찰 통계로도 분류되지 않았다. 지난해 경찰이 공식 용어를 ‘이상동기 범죄’로 바꾸고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진척이 없다. 통상 통계는 정책 입안의 근거가 된다. 유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대책 마련을 공언했던 당국이 도대체 시간만 허비하고 뭘 했는지 모르겠다.
정부와 경찰이 다시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당정은 이상동기 범죄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당사자·보호자 동의 없이 환자를 강제입원시키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주요 지하철역에 경찰특공대원을 배치했다. 하지만 처벌과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상동기 범죄 증가는 우리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대응도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2000년대 초부터 이상동기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일본은 범죄의 근본 원인을 ‘사회적 고립’으로 진단한다. 2021년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 담당 부서를 설치했고, 관련 통계와 범죄 동기도 꾸준히 모으고 있다. 급속하게 고령화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한국 사회도 고립 문제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범죄 단속·처벌에 그칠 게 아니라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상동기 범죄 사건의 전수조사부터 해야 한다. 그 통계·분석을 토대로 왜 이런 범죄가 나타났는지 살피고, 이들 범죄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내려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상동기 범죄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병리, 복지 공백과 관련 있다는 걸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식할 때가 됐다. 고립을 막기 위한 사회안전망이 실효적이고 촘촘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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