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준비하라”는 잼버리 정신 잊은 정부 남 탓할 땐가
정부가 안일한 준비와 부실한 운영으로 파행을 빚고 있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를 중단하지 않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5일 현장 브리핑에서 이번 대회를 12일 폐막일까지 일정대로 마치겠다고 밝혔다. 최다 인원을 파견한 영국과 미국·싱가포르가 참가자 안전 등 문제로 철수하기로한 직후 내린 결정이다. 이미 준비 미흡과 뒷북 대응의 난맥상을 드러내 국제적 망신과 불신을 사고도 어정쩡한 수습으로 대회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 행사 목표를 이제라도 낮추고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비상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정부는 야영지 프로그램을 연기·축소·취소하는 방안을 고육책으로 택했다. 6일 예정됐던 3만명 규모의 잼버리 K팝 콘서트를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옮겨 열기로 부랴부랴 결정했다. 한국 관광 프로그램을 잼버리에 긴급 추가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7일부터는 서울·부산 등 전국 각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야영을 하며 개척·협동 정신을 키워온 잼버리 축제가 관광 행사로 변질되는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은 폭염 때문에만 불거진 일이 아니다. 지난 1일 대회 개막 후 사흘 만에 온열질환자가 1000명을 넘고 코로나19 환자도 다수 발생한 것이 시초였다. 탈진·부상 환자가 속출하는데도 의료진과 병상이 부족해 속수무책이었다. 벌레가 들끓고, 상한 음식이 제공되고,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마저 불결해 위생 환경은 최악이었다. 대회장 매점에선 바가지요금까지 기승을 부렸다.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회 전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정부와 조직위원회 준비는 온통 소홀했다. 이번 대회는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린 행사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폭염·침수·방역·편의시설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정부는 괜찮다고 호언했다. 스카우트의 세계 공통 모토는 ‘준비’다.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인데, 한국 정부는 잼버리 정신과 엇가고 말았다.
정부는 국내외 대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파행으로 얼룩진 이번 사태의 총체적 책임을 자임하고 사과해야 한다. 미흡한 준비는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부처들은 개최지 전북도와 대회 조직위원회 등에 책임을 떠넘기고, 여당은 2017년 대회 유치가 결정됐다며 전 정부 탓을 하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는 집권 15개월 만에 치르고 윤 대통령도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대형 행사다.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국격을 실추시키고 뒷북 수습·처방에만 급급한 이 사태를 아무런 교훈과 문책 없이 어물쩍 덮을 일인가. 남 탓할 때인가. 정부는 어디서부터 부끄러운 잼버리가 됐는지 자성하고, 잘못된 건 엄벌하는 책임 행정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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