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사모펀드에 발목잡힌 녹색전환

기자 2023. 8. 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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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 활동가들 시위에서 표적이 되는 ‘나쁜 기관’ 목록에는 은행과 함께 사모펀드를 비롯해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이름이 꼭 들어간다. 무슨 까닭일까?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각종 희소자산의 소유와 독점적 통제, 여기서 얻는 지대가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핵심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소유자 자본주의로부터 소유와 통제가 분리 또는 반분리된 법인 자본주의로 변모했듯 불로소득 자본주의에도 비슷한 전개가 보인다. 가계와 기업 투자를 대신하고 자기자산도 굴리는 전문적 자산운용업과 각종 투자펀드가 발전한 것은 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는 경제주체의 자산 선호와 투자가 유례없이 중요 변수가 된 자산·부채경제시대, 그리하여 자본주의 방정식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과 궤를 같이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차이가 있다. 벤자민 브라운은 금융자산 투자 중심으로 보면서 자산운용자의 수동성을 강조한다. 반면 주택·에너지·사회 인프라 등 실물 자산투자를 중시하고 적극적 통제가 자산운용업의 특징이라 보는 이도 있는데 브렛 크리스토퍼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특징 때문에 자산운용업이 대중의 살림살이와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자산운용업자가 우리의 가장 필수적인 물리적 시스템과 프레임을 점점 더 많이 소유·통제하며 사회적 기능의 작동과 재생산의 가장 기초적 수단을 제공하는 사회”를 자산운용자사회로 정의한다.

주목되는 것은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PRI(책임투자 원칙) 경영 등 기업의 녹색전환, 나아가 유럽과 미국의 그린뉴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돈벌이 기회인 까닭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녹색전환을 역사적 투자 기회로 보며 유럽연합의 그린딜에 관여했다. 블랙록은 미국 기후정책에는 더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수석 경제고문과 재무부 차관보가 모두 블랙록 출신이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정책 방향은 금융자본의 돈벌이 위험을 제거하는 쪽으로 말랑해졌는데 이는 ‘미국 기후정책의 블랙록화’라고 불릴 만하다.

하지만 사모펀드가 녹색투자만 선호하는 건 아니다. 돈벌이만 되면 왜 회색투자를 꺼리겠는가. 사모펀드 업계가 2010년 이후 에너지사업에 투자한 금액 중 재생에너지 분야 비중은 12%, 나머지 88%는 화석연료 분야였다고 한다. 세계 10대 사모펀드의 에너지 분야 투자 포트폴리오의 80%는 화석연료사업이다. 칼라일은 투자한 에너지회사의 90%가 화석연료 기업이라는 보도도 있다. 사모펀드는 녹색전환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발목을 잡고 있다.

녹색전환과 그린뉴딜에서 재생에너지 및 신생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필수적이며, 국가 책임이 막중하다. 중대 문제는 회색자산의 전환뿐만 아니라 새로 창출될 녹색 기초자산을 어떤 형태로 소유하고 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모펀드에 칼자루를 넘겨주고 그들의 돈벌이판이 되게 하는 사유화 또는 블랙록화의 길이냐, 지속 가능한 살림살이를 위한 공공화와 탈상품화의 길이냐. 기후금융, 필수 인프라를 포함해 녹색자산 소유권 구조의 새판을 짜는 일은 경제문제일뿐더러 권력과 정치의 문제다. 지배체제를 아래로부터 흔들어 녹색체제 전환 또는 사회생태 국가의 새 길을 열려는 희망 앞에 이런 난관이 놓여 있다.

강 건너 남 얘기가 아니다. 제조업이 강해 생산주의형 신자유주의라는 특성을 갖고 있지만 거기에 겹쳐 투자자 사회로 압축성장한 한국도 사모펀드 놀이판이 됐다. 소득 주도 성장을 짓밟은 윤석열 정부의 기조는 자산 투자 주도 성장이라 할 만하다. 론스타·엘리엇·맥쿼리 사태뿐만 아니라 사모펀드는 회색투자, 녹색투자 각지에 양다리를 걸치며 녹색전환 길을 뒤틀고 있다. 그들은 김용균이 죽어나간 화력발전 정비시장에도 들어와 있다. 태양광발전 사업에는 국내 10대 자산운용사 보유 사모펀드 수가 50개, 설정액이 3조원이다.

최근 블랙록은 국내 산업가스 제조업체 에어퍼스트 지분 30%(1조원)를 인수했다. 준공영제 버스가 사모펀드 먹잇감이 됐고 국내 기관투자가와 금융사들이 ‘떡고물’을 얻어먹으려 공공성을 저버리고 사모펀드와 손잡았다는 소식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모펀드의 지지기반은 넓게 퍼져 있으며 녹색체제 전환의 장애물이 어떤 것인지 일러준다.

한국은 사모펀드에 발목잡힌 녹색전환의 길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의 전환 역량으로는 미래가 어둡다. 끊임없는 비리와 부실사태, 자기 안의 ‘이권 카르텔’을 볼 때 더 나쁜 길로 추락할지도 모른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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