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낙타가시풀
기자 2023. 8. 6. 20:47
목구멍 속까지 침이 말라버린
노쇠한 낙타 한 마리
메마른 낙타가시풀을 씹어 삼킨다
살아 있어야
시작되는 모든 것들
혀에 꽂히는 가시풀에 피 흘리면서도
모래가루 붙은 속눈썹 너머로
열사에 뿌옇게 지워진 오아시스를 찾는다
무릎 베고 잠들 짝의 그림자를 찾는다
김금용(1953~)
시인은 종종 길 위에 선다. 시 ‘길 아닌 곳 없다’에서 “초원으로 나가니/ 길인 곳 없고/ 길 아닌 곳 없”다고 했다. 초원처럼 애초에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과 동물이 다니다 보니 길이 생겨났고, 반복해서 오가다 보니 넓어지고 평평해졌을 뿐이다. 이쪽과 저쪽을 잇는 길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았다. 그런 역할을 한 실크로드를 시인이 걷고 있다. 열흘의 여정으로 실크로드를 찾은 시인은 낙타가시풀을 뜯어 먹는 “노쇠한 낙타 한 마리”와 마주친다.
시인은 “혀에 꽂히는 가시풀에 피 흘리”는 낙타를 애처로이 바라본다. 가시는 자연환경에 적응하거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지만, “목구멍 속까지 침이 말라버린” 낙타의 장애가 되진 못한다. 시인은 사막이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낙타와 낙타가시풀을 통해 “살아 있어야”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뚜벅뚜벅 걷다 보면 오아시스와 “무릎 베고 잠들 짝”을 만날 수 있다. 당장은 힘들어도 희망을 품고 산다. ‘시인의 길’도 마찬가지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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