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지겨워도 또 해야 하는 이야기
이번 칼럼에는 아주 식상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또 ‘기후위기’다. 누군가는 ‘지겹다’는 생각부터 할지 모르겠다. 쓰는 나부터 그렇다. 그래도 또 써야겠다.
얼마 전 환경담당 기자가 쓴 기후위기 관련 기사를 보면서 ‘공포’를 느꼈다. 무력감도 따라왔다. 담당기자에게 물었다. “○○씨, 어떻게 쓰는 기사마다 다 호러물(공포물)이야. 아주 무서워 죽겠어.” 담당 기자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무서워요. 그런데 다음 기사는 더 무서워요.”
소셜미디어(SNS)에서 본 어떤 ‘예언’도 떠오른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여름은,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아무리 지겹더라도 기후위기에 관해, 그 대책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당면한 기후위기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경향신문이 보도한 기사 몇 건만 훑어봐도 확인이 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27일 “올해 7월의 첫 3주간은 지구가 가장 더웠던 3주로 확인됐으며 (마지막 주 추세까지 고려할 때) 7월 전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WMO는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르면 올해 7월6일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은 17.08도로, 역대 일일 평균 지표면 기온 최고치로 기록됐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6년 8월13일의 16.8도였다. 또 올해 7월1∼23일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은 16.95도로 집계됐다. 이는 기존 월간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 최고치인 16.63도(2019년 7월)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지표면 기온이 조금 올라간 것으로는 실감이 안 날 수 있다. 16도나 17도면 선선해 적당한 온도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 이 기사는 어떤가.
올여름 미국·멕시코, 남유럽,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50도’에 달하는 폭염이 발생했다. 세계 기상학자들은 이번 폭염들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멕시코와 남유럽의 폭염은 기후변화가 아니었으면 발생할 확률이 ‘0%’에 가까웠고, 중국 폭염은 25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날 수 있는 이변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올여름 동시에 발생했다. 기후연구단체 세계기상원인분석(WWA)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기후에서 현재와 같은 폭염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했다. 미국·멕시코는 최대 950년에 한 번, 남유럽은 4400년에 한 번꼴이었다. 확률 최젓값은 산출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중국 폭염은 과거에는 25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던 폭염으로 분석됐다.
그래도 실감이 안 난다면 이 기사까지만 더 보자. 진짜 마지막이다. 올해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는 지금 당장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역대급’으로 더웠던 1994년과 2018년에 지지 않는 더위가 연일 이어지는 중이다. 그러니 모두 9월을 기다린다. 무더위가 꺾이고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9월을. 그런데 이 기사는 그런 기대마저 꺾어버리려 한다.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계속 배출하면 한국의 ‘극한 열 스트레스’가 연간 90일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재 기후에서 극한 열 스트레스는 ‘아직’ 8일 정도이니 앞으로 지금보다 12배가량으로 증가하는 셈이다. 현재 기후에서 연간 7.6일 정도 발생하는 ‘극한 열 스트레스 일’은 온실가스 초고배출 시나리오에서는 94.2일로 늘어난다. 극한 열 스트레스가 연속으로 발생하는 기간도 현재 3.5일에서 대폭 늘어난다. (온실가스) 초고배출 시나리오에서는 요즘 같은 무더위가 6월15일쯤 시작해 9월21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기후위기에, 온실가스 배출에,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미 산업화가 진행된 상태에서는 되돌릴 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늦었으니 그냥 살 수밖에 없다고 손을 드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인류가 살 곳은 지구뿐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명작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고의 안 감독님은 말씀하셨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기후위기 막기를 포기하는 순간,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순간, 인류의 삶은 끝이 난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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