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전세 피해’ 이주민 차별 말라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중국국적 동포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다. 얼마 전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2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며 성실하게 모은 전 재산인 5000만원 전세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아내와 여덟 살 난 딸 그리고 부모님까지 다섯 가족이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경찰에 신고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은 받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하고 있다. 긴급 주거를 위한 임대주택이 지원이나 기금에 따른 보증금 대출은 내부적으로 그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어 외국인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제 인천 계양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98명 중 12명이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라고 한다. 전체 피해자의 10%가 넘지만 관련 정보나 보호제도가 외국인 주민에게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는 1901명인데 이 중 외국인은 거의 없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국가는 범죄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인간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 국가의 통제를 받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구성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권력은 존재 이유가 없다. 가해자에 대한 사적 복수가 금지되고,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는 범죄자 처벌과 동시에 사전에 범죄를 예방하고 사후적으로 범죄 피해를 당한 구성원을 차별 없이 보호해야 한다. 외국인이란 이유로 이를 제한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부당한 차별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 범죄는 매우 악질적인 조직범죄이면서 법과 제도적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지능범죄이다. 범죄자들은 우리 사회가 개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온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수많은 피해자에게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사회적 재난으로 평가될 만하다. 전세사기에 이용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개선해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있다.
수십억원의 국세가 체납된 무자력자가 수천명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사실상 담보하는 빌라 건물 수십 채를 단시간에 취득해도 사전에 확인해 점검하고 제한할 수 없는 지금의 부동산 등기제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신탁제도 등 금융거래의 효율성과 자산의 유동성을 최고의 가치로 설계된 지금의 부동산 거래의 법과 제도를 점검하고,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차별 없는 보호가 중요하다. 전세사기 범죄는 주거취약 계층 및 서민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불평등 범죄다. 사회 불평등이 심각해질수록 이러한 범죄는 다시 등장해 취약한 대상을 겨냥할 것이다.
불평등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취약한 사람까지 차별 없이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피해자들에게는 국적과 상관없이 특별법에 따른 지원과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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