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평등과 다양성이 도서관의 핵심
누구나 자유롭게 독서와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공도서관은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이 인류 역사에서 탄생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지식과 학문의 독점이 지배의 수단으로 쓰인 근대 이전까지 도서관은 왕족과 귀족, 성직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도서관의 개념을 바꾼 것은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발전, 이에 따른 시민의 탄생이었다. 높아진 시민의식에 따라 지식과 학문, 문화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욕구가 높아졌다. 그리하여 1854년 미국 보스턴에서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의 경우 1901년 설립된 부산시립도서관이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공공도서관의 발전이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만큼, 도서관의 가치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유, 평등, 다양성과 연결돼 있다. 2013년 한국도서관협회가 개정·발간한 ‘한국도서관기준’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공공도서관의 자료 선택 기준은 인종, 민족, 국적, 직업, 종교, 사상, 당파, 지방적 관습 등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며, 어떤 형태의 이념적·정치적·종교적 검열이나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 도서관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최근 충남 지역의 도서관들에 특정 도서를 폐기하라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해당 도서가 성평등, 성교육을 주제로 하고 성소수자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의 민원은 충북과 경기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민원이 제기되는 도서들에는 아동들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게 한다는 취지로 여성가족부가 지정한 ‘나다움 어린이책’ 등이 포함돼 있다.
쇄도하는 민원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 되자 결국 일부 도서관에서는 해당 도서를 서가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이러한 부당한 민원에 정치권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지난 7월25일 도의회에 출석해 “7종 도서에 대해 36개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김지철 교육감 역시 관련 검토를 하겠다고 답하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공도서관 도서에 대한 부당한 민원, 이에 공공기관이 동조해 실질적인 검열 조치를 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의 침해임이 명백하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1975년 뉴욕 아일랜드트리 교육위원회는 보수 학부모 단체와 협의해 ‘반미국적, 반기독교적’ 도서를 학교 도서관에서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소를 제기했고, 연방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지역 교육위원회는 단순히 책에 포함된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정치·민족·종교 또는 기타 사상에 있어 ‘올바른 견해’를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제거할 권한이 없다.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그러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면 이는 재량을 일탈·남용해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앞서 한국 최초의 공공도서관 탄생이 1901년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이후 오랜 기간 한국의 도서관은 진정한 공공도서관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정책의 거점, 군부독재 시기에는 국가의 사상을 전파하는 사회교육기관으로 이용된 것이 한국 도서관의 역사다. 1963년 도서관법이 만들어졌지만 그 후의 개정은 1987년이 돼서야 이루어졌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공공도서관은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해 왔다.
그렇기에 지금 충남·충북·경기 등에서 이루어지는 부당한 민원과 이에 동조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이러한 역사를 되돌리는 것이다. 동시에 그간의 역사적 교훈은 말하고 있다. 평등과 존엄, 다양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들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성평등·성소수자 인권 도서에 대한 부당한 민원과 열람 제한이 즉각 중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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