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의 아이러니]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회
인터넷은 발언의 길을 열어 줬으나
사회 의사소통 능력을 하향평준화
이 불통의 시스템과 문화는
한국 사회 뒷덜미 계속 잡을 것이며
어느 순간 사회를 후퇴시킬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에 대해 “공(功)이 7이고, 과(過)가 3”이란 말이 있다. 후대의 평가든, 마오 자신이 그 정도 평가면 만족한다는 말이든, 그런 실용적 관점은 중요하다. 선과 악의 스펙트럼에서 한 극단에는 천사가, 반대편 극단에는 악마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중간 어디쯤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영웅이나 천사로 또는 역적이나 악마로 보려는 경향을 피하지 못한다.
이 사회는 증명에 소홀하다. 누가 어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대의 목소리나 다른 가능성을 따져 볼 여유 없이 공격성을 드러낸다. 멀쩡하게 살아가던 유명인이나 평범한 사람이 한순간에 죽일 놈이 된다. 그런 성향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인지라 동서고금에 흔한 일이기는 하다. 더 신중한 사람과 덜 신중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차피 평균적인 사람들은 남의 일을 쉽게 말하고, 군중심리에 휩싸이며,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현상이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에 장애를 일으키고, 이성적 대화를 통한 평가와 해결책 마련을 좌절시킨다. 한국의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 성급한 문화, 비인간적인 사회구조가 그런 경향을 극대화시켰다. 세계 문화를 선도한다는 나라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하나를 놓고도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마이크와 스피커는 소리를 잘 전달하려고 고안한 장치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하울링 현상이 발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은 인터넷을 매개로 끝없이 하울링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곳은 언론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언론이 균형감각과 철저한 사실확인이라는 임무를 다하지 않은 지 오래다. 언론사와 기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언론은 하울링을 막기는커녕 증폭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된 것에는 언론사나 기자도 어쩌지 못하는 속도주의, 성과주의, 생존경쟁의 문제가 있겠지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지금도 인터넷에 올라온 매체들의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 선정성·낚시질·편향성으로 도배돼 있다. ‘약 탄 음료’ ‘엉덩이’ ‘대박’ ‘섬뜩’ ‘거지’ ‘와르르’ ‘발칵’ ‘변기’ ‘박살’ ‘쾅’ ‘찌르겠다’…. 이것이 종합일간지 기사 제목에서 지금 몇 초 만에 찾은 단어들이다. 언어가 아니라 불을 지를 때 쓰는 불쏘시개다.
책임을 져야 할 다른 곳은 당연히 정치다. 공적 의사소통의 체계를 시대에 맞게 정립하고 운용할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는데, 그러기는커녕 시류에 편승한 천둥벌거숭이 같은 정치인이 허다하고, 양식 있는 정치인들은 거대한 부조리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
누리꾼들을 욕할 것인가? 악성 댓글의 폐해가 지적된 지 오래지만, 인류 중 일정한 비율은 어차피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들의 부정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뿐이다. 그들이 어떤 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들은 주어진 토양에서 번성하는 것이지 그런 토양을 일군 책임자는 아니다. 개인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되, 사회의 의사소통을 지나치게 교란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의사소통 방식을 설계하고 운영할 책임과 능력은 정치와 언론, 그리고 거대 커뮤니케이션 회사에 있다.
매주 몇명의 사람이 여론의 심판대에 끌려 온다. 패턴은 일정하다. 최초의 사건 보도, 죽일 놈 만들기, 해명, 후속 보도, 이 틈바구니에 참전하는 관종들, 거듭되는 논란에 지쳐가는 사람들,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기사의 등장, 그리고 새로운 죄인의 등장과 함께 망각의 세계로. 한국의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의사소통을 위한 장이 아니라, 원님 재판의 현대적 판본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는 준엄한 호통과 함께 형틀에 올려진 사람을 고문하고 취조하다가, 마침내 옥에 가두거나 들판에 버린다.
인터넷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발언의 길을 열어 주었으나 사회의 의사소통 능력을 하향평준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SNS는 이분법, 진영논리, 희생양 만들기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고 인지도를 높여주는 시스템이다. 언론과 정치는 손을 놓고 있거나 편승하고 있다. 이 불통의 시스템과 문화는 미래로 나아가려는 한국 사회의 뒷덜미를 계속 잡을 것이며, 어느 순간 현대 사회가 직면한 극도로 복잡한 문제와 대결할 능력을 빼앗음으로써 사회를 후퇴시킬 것이다. 우리는 그 심판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망연히 기다리고 있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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