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의자가 없다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역으로 홈리스 상담 활동을 나간다. 그렇다 보니 역사 안팎의 변화를 꾸준히 본다. 코로나19 이후 방역의 일환으로 사라진 의자의 일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기둥에 둥글게 붙어있던 의자도, 의자 간격을 넓히며 사라진 의자도, 3층 대합실 의자도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폭우와 폭염으로 철도 운행 지연이 잦아지면서 사라진 의자의 존재감이 커졌다. 기다리는 사람에 비해 앉을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아예 돗자리를 펴고 앉은 준비성 좋은 이들도 있고, 계단이나 벽을 타고 자리를 찾은 요령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냥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역사가 붐빌수록 서울역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눈칫밥도 늘어난다. 인근 쪽방, 고시원 주민이나 홈리스 등 폭염과 폭우를 역사에서나마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밀려난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2004년 통합 민자역사로 건설된 현재의 서울역은 전체 역사 면적의 단 16%만이 역무 관련 공간이다. 84%는 백화점과 상가와 같은 상업시설이다. 용산역의 경우 역무 시설은 단 10%다. 공공역사에 상업시설이 범람하니 사람들은 아메리카노 한잔이라도 사야 앉을 곳을 얻는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는 문제다. 공공장소 이용 경험은 도시와 사회의 역할에 대한 마땅한 기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의 질이 낮아질수록 시민들은 사회와 공적 영역의 역할을 요구하는 대신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구입한다. 낡고 불편한 공공서비스는 공적 영역 무용론에 힘을 싣고, 사유화의 발판이 된다.
미국 시카고의 폭염에 의한 사망을 분석했던 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연구에 따르면, 계층별 사망률의 유의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나 생존한 저소득층, 노인들은 이웃과 마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도서관을 비롯한 공공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관계를 쌓는 물리적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질 좋은 공공서비스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에 진가를 발휘하는 ‘사회의 힘’이다.
의자가 없는 곳은 서울역뿐만 아니다. 전면 철거식 재개발이 반복될 때마다 사람들은 골목이 만나는 길목과 정자, 나무 그늘 밑 의자들을 잃었다. 서울 종로의 노인들은 지하철 출구에 달린 옹색한 난간에 엉덩이를 걸쳐야 하고, 맥도날드에서 눈치싸움을 벌인다. 기온이 높을 때마다 정부는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를 보내지만 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그의 사정을 짐작하고 안부를 묻는 이웃이다.
의자가 없다. 정확히는 무료 의자가 없다. 한국 사회에 고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분열한 사회, 사적 이해에 몰두하지만 결국 외로운 우리 모두의 고립을 수선하기 위해 더 많은 의자가 필요하지 않나.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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