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시골 병실에서
어릴 적 장마철엔 수해 입어도
느닷없는 죽음 ‘들’은 기억 안 나
버리면 버림당한다는 건 진리
버리면 도움받을 기회도
사라진다는 상식을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연세 따라 시골 병원에 가는 빈도수가 잦아진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 대신 어떤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실감도 사실 든다. 다행이라면 동생 내외가 함께 있고 읍내에 단골(?) 병원이 있다는 정도. 지난봄에는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과 어머니의 건강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머니의 건강 상태나 병력을 잘 아는 의사 양반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대부분의 시골 병원이 그렇겠지만 병실에는 죄다 나이 든 노인들뿐이다. 간혹 젊은 사람들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어떤 분들은 생을 포기하신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어머니가 점심을 힘들게 드시는 동안 밥을 안 먹겠다는 다른 노인의 간단한 부탁도 들어줘야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흥겨운 노래와 중간중간 요란한 광고만 쏟아져 나온다. 이번에 관찰하게 된 재밌는 점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트로트 열풍이 시골의 노인들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방문한 병실에 한한 관찰이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있는 옆 병실에 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트로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청자들의 연령대도 그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 하나 공통점은, 도시에 사는 여성들이 그 프로그램에 전화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여기서 무슨 대단한 문화현상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릴 때 살던 마을에는 이제 ‘외지인’들이 이사 와서 산다. 예전에 비하면 집들도 많이 번듯해졌고 마당에 잔디를 깔고 사는 이들도 있다. 풍경은 예전만 못하지만 강이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기슭에 있는 마을이니 일종의 전원주택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동 수단은 당연히 개인 자동차여서 비좁던 마을 길도 넓어졌다. 친구들의 어머니들도 대부분 요양병원에 계시거나 돌아가신 분도 여럿이다. 대부분 평생을 농사지어서 도시에 사는 분들에 비해 노화가 빠른 편이다.
어머니가 잠시 주무시는 틈을 타 책을 펼쳤다가 잘 읽히지 않아 창밖을 봤다. 들판이 온통 도로투성이다. 읍내에서 전주 시내로 가는 최단 거리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내가 떠난 이후로 논은 길로 바뀌고,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파트들이 들어선 것도 물론이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학교 1~2학년 때인가 <데미안>을 들고 참새를 쫓던 논두렁 언저리다. 아니면 박정희가 총 맞아 죽던 날, 가을 소풍 대신 나락 타작을 거들던 논 근처던가(그래 봐야 도짓논이었다). 그때의 눈과 지금의 눈은 너무도 달라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저 길들이 생기기 전 도시로 나와 노동자가 되었지만 결국 저 길들을 따라 떠난 것과도 진배없다. 누군가 떠나기 시작해서 길이 생긴 것이기도 하고, 길이 생겨서 떠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오송의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길은 논 가운데를 가로질러 만들어졌고 가까이에 큰 냇물이 있는 것도 알게 됐다. 불어난 물은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이 제방을 넘어 논을 휩쓴 다음 지하차도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갔다. 며칠 뒤 어디를 가다가 새삼스럽게 도로 주위를 살펴봤더니, 인간의 길은 자연을 밀어낸 것에 불과하더라.
시골에 난 도로는 그 테두리에 가드레일이라는 장벽을 설치한다. 이것은 인간의 속도를 보장하고 지켜주기 위함임과 동시에 자연과의 분리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골의 자동차 전용도로 같은 데서 인간은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한다. 점과 점 사이를 선으로 이은 근대 문명은 인간에게 속도를 강요하고, 그 사이의 면적은 단지 부동산으로 취급된다. 땅은 사라졌다.
어릴 적, 장마철이면 강은 자주 범람해서 들판을 덮었다. 우리 마을처럼 산기슭이 아니라 그냥 강가에 자리 잡은 마을들은 그때마다 수해를 입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했다. 가끔 허술한 집은 무너지고 다른 터에 집을 다시 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느닷없는 죽음‘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버리면 버림당한다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것 같다. 윤리적인 차원의 인과응보가 아니라 버리면 도움 받을 기회도 사라진다는 상식을 말하는 것이다. 시골 병원의 병실에는 여성 축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들이 힘겹게 누워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트로트도 사치처럼 보였다. 암 보험 광고는 조롱처럼 들렸다.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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