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에… ‘불안지대’ 된 도로 안전지대

박세준 2023. 8. 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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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의 안전과 교통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된 도로 위 안전지대가 불법 시위·집회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지대 위의 집회가 인근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고 차량 흐름에 방해를 주는 등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지만, 이를 금지하는 명확한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등 관계 법령에서는 안전지대에서 보행자의 행동에 대한 세부사항이나 집회·시위 금지 등을 규정한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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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곡사거리서 10년째 복직 요구
인도 집회활동 구청에 제지되자
7월부터 황색빗금 구역 점거
운전자 시야 방해 등 안전 ‘위협’
“집회 자유·타인 기본권 침해 사이
균형점 찾을 명확한 지침 정해야”

보행자의 안전과 교통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된 도로 위 안전지대가 불법 시위·집회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지대 위의 집회가 인근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고 차량 흐름에 방해를 주는 등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지만, 이를 금지하는 명확한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6일 독자와 주변 지역 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염곡사거리 9차선 도로 한복판의 안전지대에서 A씨가 지난달 중순부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염곡사거리는 양재대로와 강남대로, 경부고속도로, 강남순환도로 등 주요 도로로 이동하기 위한 차량 통행량이 많아 지·정체가 잦은 구간이다.
서울 서초구 염곡사거리 도로 한복판 안전지대에서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A씨는 기아 판매대리점에서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이후 염곡사거리 인근 현대차그룹 사옥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10년 넘게 시위를 해 왔다. 해당 판매대리점 대표가 개인사업자라 기아는 A씨의 복직 요구 등에 협조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 인도와 도로 가장자리에 현수막을 다수 설치하고, 확성기와 스피커 등을 이용해 시위를 진행했다. 이에 따른 민원 제기가 잇따르자, 관할 구청은 지난 6월 행정대집행을 통해 천막과 현수막, 인화성 물질(LPG 가스통, 부탄가스 등)을 철거했다.

A씨는 행정대집행 이후 지난달부터 염곡사거리 중앙 약 700㎡ 면적의 안전지대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 왔다. 다시 천막을 설치했고, 차량도 주차했다. 도로교통법 제32조 3항은 안전지대 사방 각 10m 이내에 차량 정차와 주차를 금지하고 있다.

인근 지역 상인은 “집회하는 사람들이 스피커와 현수막 등을 수레에 싣고 무단횡단을 반복하면서 집기류를 옮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면서 “식사도 안전지대 안에서 해결하고 도로변에서 노상방뇨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안전지대는 교통사고와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행자와 위급 차량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안전지대에 차량이 멈춰 있거나 장애물이 방치돼 있으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보행자와 사고 차량이 대피할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2차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불법 주차나 장애물 적치 외에 A씨의 집회 자체는 현행법 위반이 아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로 등에서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등 관계 법령에서는 안전지대에서 보행자의 행동에 대한 세부사항이나 집회·시위 금지 등을 규정한 내용은 없다. A씨 등도 경찰에 정상적으로 집회 신고를 하고 시위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인도를 점유한 집회 활동이 관할 구청의 제재로 저지된 이후에도 법망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안전지대에서 집회를 계속하는 것은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보행로나 건물 입구 등 통행 방해 요소가 있으면 집회·시위에 경찰력을 투입할 수 있고, 일본 등에서는 도로에 차량을 세워 교통을 방해하는 시위를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집회·시위의 자유와 타인의 기본권 침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명확한 지침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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